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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봉화산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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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때 같으면 전국 각지에서는 지역 특색을 살린 각종 축제가 벌어졌겠지만, 코로나 19는 사회 전반의 일상적인 일과 뿐 아니라 사회 분위기 전체를 많이 변하게 해 버렸죠.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그럭저럭 별 다른 행사 없이 지나가다보니, 꽤나 스산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흔히, 어두운 미래세계를 그린 SF 영화에서나 보던 무미건조한 나날들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죠.

온갖 오염물질로 인해 희뿌연 대기에 전쟁 뒤끝인지 절반은 망가진 고층 빌딩 들 속에서 음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같은 것들...

게다가, 우리 앞에는 어떤 종류의 또 다른 미생물의 습격이 기다리고 있을지 참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무섭네요. 서울, 경기 지역에서 코로나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안 보이니 더욱 공포스러운 상황으로 확산될까 우려됩니다.

 

@bananablackcat.unsplash

 

모두들 아직은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 쪽 지역에서는 상당기간 코로나 확진자가 추가 발생이 없다보니 많은 부분은 코로나 사태이전의 상태로 회복되고 있는 듯 한 분위기입니다.

 

식당가는 풀린 돈을 소비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카페나 술집에도 제법 많은 공간들이 사람들로 채워져 있구요. 도로에도 차들이 넘쳐납니다.

 

문득 사람들의 공포심이라는 게 얼마나 빨리 퍼지고, 또 긴장감이 얼마나 쉽게 느슨해지는가도 느껴집니다. 아마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분들이 느끼는 것과 서울 경기 지역에 있는 분들이 체감하는 것과는 정말 많이 다를 거라 생각됩니다.

 

제주도 올레길.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둘레길은 제주특별자치도와 서울특별시의 올레길 성공에 힘입어 전국의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하여 아마도 지금쯤이면 지자체별로 꽤나 많은 수의 둘레길들이 조성되어 있을 겁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서는 구 시내권과 신 시가지 사이에 봉화산이 위치해 있는데, 정상이 450 미터 정도여서 한 시간이 채 안되는 산행으로도 정상에 도달할 수 있어서 주말에 부담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답니다.

 

 

이 봉화산에도 오래 전부터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총 길이가 12 Km 정도여서 천천히 도보트래킹을 하면 4시간 가량이 소요된답니다.

 

출처 : 프라임 경제

 

제 발이 물러서인지, 3 시간 넘게 산행하다보면 꼭 물집이 잡히거나 살이 까여서 고통스럽더라구요. 그러다보니, 최근 수 년간은 봉화산 둘레길 완주를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처음에 막 둘레길을 조성했을 때는 참 많이 다녔었죠. 경사가 완만한 구역에서는 뛰기도 하는데 그러다보면 3시간 30분 정도 걸리기도 하더군요.

 

일부 구역은 산행코스 그대로 둘레길에 접목시켜 놓아서 꽤나 경사도가 급한 구역도 있어서, 지친 발걸음을 더욱 힘들게 하더군요. 그래서 최근엔 둘레길 조금 걷다가 정상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코스로 2시간 정도의 산행을 위주로 하곤 했었죠.

 

 

예전엔 봉화산 둘레길을 돌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 이슬이 사라지기 직전에 트래킹을 시작했었죠. 사실 이때가 산행을 하기 제일 좋은 시간 때이기도 하구요... 오늘은 조금 늦게 10시 경부터 둘레길 완주를 시도해 봅니다. 왠지 중간에 샛길로 빠져 정상 찍고 내려오는 코스를 밟지 않을까 싶었죠...

 

 

12km 에 이르는 둘레길은 대략 400 미터 간격으로 번호가 매겨져 있어서 1번부터 29번의 위치 알림목이 세워져 있어서 처음 둘레길을 걷는 분들도 어느정도 둘레길을 돌고 있는지 이정표로 삼을 수 있답니다.

 

 

 

둘레길 주변에는 제가 알지 못하는 수 천종의 식물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지요. 소나무, 참나무, 편백나무, 밤나무 등 누구나 알아보는 나무를 제외하고는 모르는 나무들과 식물들 천지지요...

 

집에서 가까운 쪽에 있는 둘레길 위치 알림목은 19번이어서, 봉화길 시작 부위에 왔을 때는 상당히 지쳐 있을 때였죠. 몇일 전부터 갑작스레 기온이 올라 제법 여름내음도 물씬 풍겼구요. 하지만, 그늘진 곳은 여전히 시원한 바람과 함께 선선하더군요.

 

 

 

 

정해진 거리, 어느 정도 정해진 시간을 트래킹 하려다 보니 문득 우리네 인생길과 엇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4시간여의 오롯한 사색의 시간...

 

하지만, 50여명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뱉어내는 소음은 끊임없이 생각의 주제들을 끊어내고 깊이 있는 생각들로의 진입을 방해하더군요. 이른 시간에 트래킹을 시작할 때의 장점이 사라지는 거죠.

 

 

트래킹을 하면서 점점 소진되어 가는 체력과 몸 여기저기 생겨나는 통증들은 우리네 삶이 끝을 향해 나아갈 때 고통을 동반한 쇠약해질 육신의 모습과 닮아 있을 거예요.

벌써 세 분의 별세를 지켜 보면서, 이 세상을 떠날 때의 내 모습이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할 지에 대한 고민도 제법 해 본 상태여서 그런 면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상념이 떠오르곤 하더군요.

 

 

 

두 시간 반 가량을 걷다보니, 새끼 발가락 쪽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네요.

한번의 쉼 없이 걸어왔다는 생각에 근처에 마련된 정자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산행과는 좀 다른 결이 느껴집니다. 엇 비슷한 풍경이라 그런지 이런 저런 생각들도 훨씬 더 많이 드는 것 같구요.

 

 

예전엔 참 크게 보였던 암벽이 그닥 커 보이지 않은 것은 기억의 왜곡일거예요.

 

우리들은 얼마나 정확한 기억을 품고 사는 걸까요... 혹여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만 혹은 괴롭지 않은 쪽으로만 변형하여 과거를 저장해 놓고 있지는 않을까요?

 

 

이제 봉화산 둘레길로써는 본격적으로 힘든 구간이 시작되네요.

 

기존 등산로와 접목해서 경사가 꽤 심한 길들이 꽤나 길게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우리 인생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듯 말이죠.

한 걸음 한 걸음 아픈 발가락의 통증을 참아가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이 길의 끝에 도달해 있겠죠. 가끔씩은 정말 아무 생각없이 그저 걷는 데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아무 생각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는 것 처럼 말이죠...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을 뒤 덮고 있는 다양한 초록의 모습들이 생경하게 느껴집니다. 둘레길 한 구석에 뒤엉켜 있는 각종 식물들의 살아가는 모습 또한 어쩌면 우리네 일상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더군요. 얽히고 설켜 뒤죽박죽 되어 있는 모습이 말이죠...

 

둘레길 한 복판을 가로 질러가는 뱀 한마리를 보았습니다. 붉은 색과 검정색의 강렬한 대비로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는데, 몇 년전 새벽에 둘레길을 걷다가 보았던 사슴의 모습이 갑작스레 떠 올랐어요. 방목해 놓았던 사슴이라는 걸 몰랐던 때라 정말 신비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향수'라는 제목의 글을 새겨 놓은 작품도 둘레길 주변에 세워져 있네요.

 

둘레길 주변에는 여러개의 정자와 돌 무더기탑 그리고 바닥에 깔아놓은 멍석들과 말뚝 들... 참 많은 인간의 손길이 닿아 있어요.

트레킹 하기에는 훨씬 편하지만, 너무 많은 인공의 조작들은 자연스러움에서 한 발 멀어진 느낌도 주더군요.

 

 

얼마나 많은 발걸음을 받아냈을까요. 둘레길에 가장 먼저 깔리기 시작했던 멍석들은 벌써 너덜너덜해진 것들이 많네요.

 

수년전에 비해 훨씬 울창해진 둘레길 주변의 식물들의 모습과 다양하게 피어 있는 야생화의 모습들에서 왕성한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3시간 반 가량의 도보가 가져오는 피로감과 통증이 역시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하네요.

 

마주쳐 지나가는 트래킹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비쩍 마른 체격의 소유자들이더군요. 모두 중년 이상의 나이였음에도 예전에 흔히 말하는 중년뱃살 같은 것 없는 사람들 말이죠...^^

 

 

사실 조금만 마음을 두고 찬찬히 둘러보면, 식물들도 어느 하나 똑 같은 모습이 없습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이지만요...

 

끝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트레킹이었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보낸 시간이었어요. 마지막 30여분은 발가락과 발등의 통증과 기진맥진하게 된 체력으로 참 힘들더군요... 머리 속에는 내려가면 뭘 먹을까 하는 생각밖에는 안 떠오르구요...^^

 

 

 

위치 알림목 29번을 지나 둘레길의 끝을 알리는 작은 나무 교각이 드디어 나옵니다.

몇 년만의 둘레길 완주는 나름의 성취감을 주기도 했지만, 확실히 줄어든 체력을 실감하게도 해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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