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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어른의 것. 한상복. (어른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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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위즈덤하우스. 예스 24. 2016년

 

작가 한상복씨는 대원고를 졸업해 성균관대 영문과를 나왔고 서울경제신문에 입사해 근무하다가 이데일리 증권부기자생활을 하였다. 일간지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2차 지망처에서 합격통보를 받고 취업재수를 해서 원하는 곳에 다시 지원을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서울경제신문에 입사했다고 한다. 

이후 작가로 전업하여 여러 권의 책을 냈고, 그 중 <배려>는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2006년 네티즌이 선정한 올해의 책으로 뽑히기도 했다. 누구나 할 법한 고민을 고스란히 책 내용에 옮겨 놓아서 에피소드마다 몰입도가 굉장히 높은 글들이 많았다.

<어른의 것>은 한상복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에세이이다.


 

십 수년도 더 전의 일이다.

영어회화를 배우기 위해 제법 유명세가 있는 학원을 등록한 적이 있었다. 인근 대도시에서는 등록하려면 새벽부터 엄청난 대기줄을 서야 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내가 사는 소도시에서는 겨우 등록인원을 채울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수강생들의 퀄리티도 도토리 키재기로 그저 그래서 대도시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쳐 보였다.

한참 다니다보니, 승급을 하는 수강생들의 면면도 자연스럽게 회화능력을 늘려나갔다기 보다는 달달 외워서 테스트를 통과해 따낸 것이었으니 그 수준은 할 말 다한 셈이다.

그러다보니, 수업시간의 프리토킹 타임은 콩글리쉬 남발에 유치원 수준의 회화로 늘 빈 껍질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2시간 수업중 30여분을 그런 수업으로 떼운 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antenna/unsplash

 

원어민 강사의 "자신이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나?"하는 뻔한 주제로 프리토킹을 하던 시간이었다.

오랜 시간 수업을 같이 들었던 수강생들은 서로의 실력을 뻔히 알기에 수박겉 핧기 식의 답변이 이어질 것 또한 뻔히 알고 있었다.

아무리 깊고 진중한 생각을 했을지라도 그것을 표현해 낼 방법을 익히지 못한 수강생들의 유치원생 수준 영어는 대부분 "rich man"이니 "power man" 혹은 "happy man" 같은 유치찬란한 콩글리쉬를 강의실 내로 뱉어냈고 그러다보니 서로 키득거리며 뜻하지 않은 개그콘서트 현장을 연출하고 말았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탠 나의 답변은 "wise man" 이었다.

내 대답에 대한 이유를 묻는 원어민 강사의 질문에는 거의 버벅대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 머리속의 현란한 수식어 가득한 한국어들이 영어로 번역되어 나오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아마 영어회화에 서투른 사람들 대부분이 외국인과 마주쳐 얘기를 하게 되면 겪게 되는 일일 터이다.

 

어찌됐든 그 이후로, 난 꽤나 자주 "현명한 사람"이란 주제에 천착하며 사색을 하곤 했었다.

그러면서, 영어회화 시간에 면피하기 위한 순간적인 대답이 실제로는 내가 가장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무의식 속에 있던 나의 바램이 영어회화시간이라는 이색적인 시간에 특별한 거름장치를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온 것이었나 보다.


오래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인생의 후배들에게 현명한 조언을 해주는 장면들이 흔히 등장하곤 했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아마도 내가 원했던 모습이 그런 지혜로운 어른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세태가 변하면서 지혜의 상징이었던 어르신들의 자리를 인터넷이 꽤 차면서 지혜로워진다는 의미도 많이 퇴색된 듯 하다.

같은 나이대이면서도 어떤 이는 사회지도층으로써 타의 모범이 되는가 하면 어떤이는 꼰대가 되어 혹은 잉여인간이 되어 전자의 어르신들과 상대적인 비교를 하게 만든다. 그런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인생의 절반을 지나가게 되면서는 정점의 시기를 지난 후 나머지 시기는 대부분 내리막길을 걷게 되기 십상이다. 절정의 시기와 비교를 하면서 내리막길을 가야하는 중년이후의 삶은 미래보다는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theexplorerdad/unsplash

 

불안한 세상에서 나를 지켜내는 힘이란 부제로 낸 <어른의 것>이란 책은 같은 또래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했음직한 생각들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꽤나 사색적인 재미를 주는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지혜로운 어른의 역할을 책을 통해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책을 읽다보면 이제 50대 중반을 지나는 작가의 감성이 정말 민감하고 세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나이들수록 감성이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작은 것 하나 하나에서 느끼고 사색하고 글로 남기는 정성스런 행보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사색하는 도중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 하나 하나를 잡아서 글로 옮기는 작업은 정말 녹녹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이들의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를 가독성 높게 펼쳐냄으로써 시종일관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필력에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절친한 친구에게도 차마 털어놓지 못했던 부끄러운 고민들... 하지만, "아~하~...내가 했던 이런 고민들을 나와 비슷한 또래의 누군가는 똑 같이 하고 있었구나." 싶은 이런 내용의 책을 읽는 것은 정말 베프와의 찐한 술자리를 갖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처럼 힐링되는 좋은 시간을 갖는 셈이었다.

자신의 경험담이나 주변인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전해지는 진솔하고 현실적인 조언들은 사람마다 처한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 달리 들리겠지만, 내게는 정말 공감가는 말들이 너무 많았다.

목     차


프롤로그_ 불안한 세상에서 나를 지켜내려면

1. 괜찮은 척, 안 아픈 척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꿈을 이루지 못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하고 싶은 게 많다면 아직 기회는 충분하다

원치 않은 일을 선택한 것도 결국 나 자신이다

얼굴이 살아온 시간을 말해준다

어른이 되어야 알 수 있는 것들

돌아가는 길이 더 빠를 때가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에 얻을 수 있는 것

누군가를 선택했다는 의미

언제나 이유를 늦게 아는 게 인생

가까운 사이일수록 참지 마라

살아갈 날들을 위한 준비

쓸수록 커지는 마음의 힘

큰일보다 사소한 일이 삶을 바꿀 때가 있다

자신을 너그럽게 대해야 하는 이유

‘무엇’보다 ‘어떻게’ 전하느냐가 중요하다

2. 흔들려도 앞으로 나아간다

넘치는 사랑을 받지 않아 행복한 이유

인생은 나쁜 일만 주지 않는다

돈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을 길러라

기회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공통점

오늘 이 순간을 아쉬워할 과거로 만들지 말자

언제 올지 모를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 것

내 몫이 아닌 것을 욕심 낸 결과

취향과 고집의 차이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배웠다

1등의 고단함

나에게 맞는 사람을 알아보는 법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는 사람은 없다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

인간관계의 목적

자기 확신을 키우는 연습

혼이 나면서 알게 되는 것

실제보다 불행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3. 불안과 두려움을 여유와 자신감으로 바꾸는 힘

목표를 이루는 가장 빠른 방법

만나고 싶은 사람 피하고 싶은 사람

자세가 자신감을 결정한다

자신감을 의심해야 할 때

안정적일 때 모험을 준비하라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

만날수록 좋은 사람

나는 왜 그 이야기가 듣기 싫을까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은 아닌가

아는 척하지 않을 때 얻는 세 가지

어느새 부모님을 닮아 있다

비논리가 논리를 이길 때

공감을 이끌어내는 말하기

내가 모르던 나와 만나는 방법

본전에 연연하지 않는다

반전을 부르는 포기의 타이밍

4. 아직 내게는 실패하지 않은 날들이 남아 있어

회사는 일 중독자를 원하지 않는다

내 안의 악마와 공존하는 법

실패를 인정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지금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은 것들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는 힘

자존심 좀 상하면 어떤가

사내 권력 투쟁의 승자는 언제나 정해져 있다

현실적 비관론자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대가

캔디가 사랑받는 이유

이별이 이별하는 법을 알려준다

회사의 성과를 나의 실력으로 착각하지 마라

내가 나의 버팀목이다

나 없는 내 인생

우리에게는 쓸데없는 대화가 필요하다

불안을 이기는 어른스러움

에필로그_ 누군가의 한 사람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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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훓어보는 것 만으로도 책을 읽는 도중 느꼈던 공감과 깨달음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듯 하다.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사색의 시간을 가져 봐야겠다.

어른스럽다는 것은 어떤 걸 말하는 걸까?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 인생에 정답은 없으며, 어떤 삶이 훌륭한 것인지에 대한 정의 또한 애매하다.

못돼먹은 정치인처럼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사람들의 능청스런 욕망이 순진해빠진 이들의 선의를 즈려밟고 승승장구 할 때, 삶은 해피엔딩의 시트콤이 아님을 현타(time)하기도 한다.

흔히 위인이라 배웠던 이들의 훌륭했던 삶의 이면에 적지 않은 못된 그림자들이 있음을 알게 됐을 때의 혼란스러움과 꺼림직한 느낌도 살아갈수록 늘어 간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에게서 인생의 후배들이 현명한 가르침을 받는 장면이 등장하곤 한다. 예전 어르신들의 모습은 세상만사에 치이면서 쌓인 인생의 지혜들이 솟아나는 샘물과 같았다. 하지만, 인터넷이란 문명의 이기에 밀려 어르신들의 존재가치는 빛을 많이 잃었다.

유병율이 높은 채 늘어난 기대수명 덕(?)에 혹독한 말년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도 많은 듯하다.

최근에는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전 세계인이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다.

죽음으로 생을 끝내는 순간까지 우리는 크고 작은 수 없이 많은 걱정거리와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며 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경험담과 주변인들이 겪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전해지는 진솔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사람마다 처한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 달리 들리겠지만 격하게 공감이 가는 말들도 적지 않다.

책 속에 나오는 우리 마음 속 두 늑대에 관해 손자에게 들려주는 인디언 추장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 마음속에는 화, 질투, 후회, 탐욕, 거만, 자기연민, 죄의식, 회한을 가진 나쁜 늑대와 기쁨, 평안, 소망, 사랑, 겸손 등을 가진 좋은 늑대가 서로 싸우고 있다고 인디언 추장이 손자에게 말한다.

그럼 둘 중 어떤 늑대가 이겨요?”라는 손자의 질문에 인디언 추장은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나쁜 늑대에게 먹이를 주었던 수많은 시간들이 떠올랐다.

1955년 미국 하와이 제도의 섬 카우아이에서 태어난 문제가정의 아이들 201명에 대한 30년이 넘는 기간의 초장기 심리학 실험이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3분의 2가량에서는 학습장애와 학교적응장애를 보이고 심각한 정신질환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데, 나머지 72명은 모범적이고 진취적으로 성장했는데 연구진들은 이들에게서 공통점을 찾아냈다. 바로 이들을 응원하는 어른이 한명 이상 있었다는 점이다. 부모가 아니라도 조부모, 삼촌, 이모 혹은 이웃 어른일지라도...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그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격려해 준다면 아이들은 절망에 굴하지 않은 회복탄력성을 키우더라는 결론이다. 저자는 이 책이 그런 어른의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책을 펴냈다고 한다.

또한 나와 꽤 죽이 잘 맞는 작가인 듯 하여, 그간 펴낸 책들을 다시 쭉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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