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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소쇄원. 담양소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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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일 만에 코로나19 신규확진자가 국내발생은 2일 연속 없었고, 해외 유입자만 몇 명씩 발생할만큼 확산세는 눈에 띄게 잦아들었네요.

"코로나19의 한국 내 종식은 아니며 생활 속 거리두기를 아직은 실천해야 한다."지만, 그 동안 코로나에 짓눌렸던 사람들 마음은 한결 편해진 듯 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담양 소쇄원을 찾았네요.

거의 십 수년 전인거 같아요. 지인 중에 유독 소쇄원을 좋아하시는 분이 있죠.

제 기억에도 무척 좋은 느낌으로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구요.

 

 

목적지에서 30여분을 더 돌아 들러본 소쇄원은 전에 없던 주차장이며, 관람객 입장료하며 이 곳도 사람의 손 떼를 많이 탄 것 같더군요.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이 곳에 왔을 땐 지나는 길에 도로변에 차를 대 놓고 들러 보았던 기억인데 말이죠...

바람에 흔들리며 부서지는 대나무 잎들의 기분 좋은 노랫소리와 은은한 대나무 향...

뭐 그런 기억들말예요...^^

 

 

소쇄원 입구 좌측에 민가가 있네요...

 

민가 입구에 개 조심푯말까지 떡 허니 붙여 놨는데... 헐~ 순하게 생긴 녀석이 늘어져라 자고 있네요.

순간 풋~ 실소가 나왔어요. 딱 봐도 순둥이 같더군요.

"오뉴월 개팔자 상팔자"라더니...ㅎㅎㅎ

 

 

조금 안타까운 게, 들어가는 입구부터 화끈하게 길을 만들어서 시멘트로 깔아놓았군요.

아마도 보행이 불편한 관광객들을 위해서 그런 듯 한데.....

 

예전의 대나무 숲의 운치를 깡그리 없애버린 듯 해 여간 서운한 게 아니네요.

 

소쇄원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소쇄원길 17

 

 

 

 

속내를 익히 아는 지라, 2천원이나 받는 입장료도 솔직히 못 마땅했구요. 그나마, 주차료는 안 받더군요.

어린이날을 맞이해, 아마 전국 각지의 관광지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댔을 거 같네요.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 간의 거리는 조금 두면서 말이죠. 이 곳도 마찬가지였어요.

 

 

담양의 소쇄원은 한국의 민간 정원 중에서는 최고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곳이죠.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곳이니, 500여년 가가운 세월을 품고 있죠.

 

아기자기하게 구성되어 있는 이 정원은 천연의 지형을 이용해 조성한 만큼, 인공적으로 깍고 세운 조형미는 전혀 없지요.

 

 

명승 제 40호인 소쇄원은 1530년경에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지은별서원림이라고 하는데, 별서란 세속을 떠난 선비가 자연에 귀의하여 은거생활을 하는 곳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요. 요즘으로 치면 별장 같은 거겠죠^^... 원림은 정원이란 말과 혼용해 쓰곤 하는데, 일본에서는 정원이란 단어를 더 선호했고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원림이란 단어를 더 선호해서 썼다고 하더군요.

 

 

작은 동산과 숲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그대로 조경하여 적절한 위치에 집이나 정자 등 인공적인 조경을 살짝 가미해 만들어 자연친화적인 정원을 만드는 것이죠.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다이나믹한 변화가 있고, 나무와 꽃과 개울물이 있는 참 멋진 정원이에요.

 

 

제월당은 구들방과 마루가 있어 실제로 기거했던 안채인 거 같더군요.

마루 위쪽에 여러 시문이 적힌 글들이 붙어 있어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해줍니다.

 

양산보는 왕도정치를 표방하고 개혁을 시도했던조광조밑에서 수학했는데,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유배당한뒤 사약을 받고 죽자 이에 큰 충격을 받고 낙향하여 은둔하면서 소쇄원을 꾸미게 되었다고 해요.

 

훗 날의 역사는 연산군시대의 악정을 개혁하고 신진사류를 중용하려던 조광조의 개혁이 너무 이상적인데다 급하게 진행되어 반대파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기묘사화로 이어졌다고 평가한다죠...

 

 

안빈낙도()

이곳을 둘러보면 딱 떠오르는 말이죠.

그 당시야 얼마나 먹거리가 풍족했겠어요...

그래도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재산은 있었겠죠?

소식하고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려면 말이죠...

아닐까요? ^^

 

 

소쇄원은 당대 최고의 선비들이 풍광을 관상하며 여유를 즐기던 장소이자 이상을 토로하던 문화담론의 산실이라고 해요.

정철, 송시열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사유와 만남의 지평을 넓히곤 했다고 하니까요...

 

양산보의 사돈 김인후가 1548년 소쇄원을 보고 쓴 48수의 시제에 소쇄원의 당시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는데, 대숲의 바람소리과 소쩍새 울음 엷은 그늘과 밝은 달등 참으로 낭만적이고 풍류가 넘치는 장소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소쇄원은 큰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과 그 사이를 떨어지는 물줄기, 수많은 화초와 나무들 그리고 작고 단아한 정자와 거주공간, 네모단 연못과 계곡을 건너는 나무다리 등 수 많은 조경물들로 그득하더라구요.

 

봉황을 기다린다는 대봉대(待鳳臺)

귀한 손님 오기를 기다리는 정겨운 마음이 가득한 정자입니다...

 

 

정원 오른편 대나무 숲 사이에 작은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더군요.

나뭇잎이 전형적인 은행잎이여서 지레 은행나무라 뇌피셜해버렸는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커다란 은행나무만 봐와서 이게 막 자라기 시작한 어린 은행나무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하기야, 처음부터 커다랗게 큰 나무가 어디있겠어요? ^^

 

이렇게 빽빽하게 자라면서도 그 사이 사이로 다른 식물들이 자라날 공간을 내어주는 대나무의 품성이 남달라 보이더군요...

아님, 대나무가 생명력을 잃으면서 그 자리를 새 생명들에게 빼앗기고 있는 걸까요?

색 바랜 대나무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도 스쳐가네요.

 

 

하필, 둘러보던 시간대에 정원주변을 정리하는지 풀깎는 요란한 기계소리로 시끄러웠고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들로 고즈넉한 시간을 갖지는 못했지만 크진 않지만 참 멋진 장소임에는 변함이 없더라구요.

 

하지만, 더 이상의 인공적인 훼손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은 어쩔 수 없더군요...

자연친화적으로 살던 옛 선인들의 지혜를 왜 후대인들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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