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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여행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아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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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 1881~1973)는 입체화가의 제왕격이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현대작가로써 스페인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프랑스 미술에 영향을 받아 파리로 이주했었죠.

평생동안 수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던 유명화가답게, 태어나면서의 일화도 남 다르네요.

보통의 아기들은 태어나면서 세상에 자기의 탄생을 알리기라도 하듯 신나게 울어젖히잖아요. 혹자는 낯선 환경에 부닥친 아기들의 두려움의 표현이라고 하기도 하구요. 어찌됐건 큰소리로 울어대는 건, 양수에 젖어 있던 폐포들을 쫘악 쫙 늘려주어 아기가 건강하게 자랄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인데요...

피카소는 태어난 직후 뺨을 때려도 울지 않을 정도였다고 해요. 마침내 의사가 시가를 크게 빨아들여 아기의 얼굴에 뿜었더니 그제서야 울음을 터트렸다고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살기를 거부하는 듯(?) 했던 피카소는 92세까지 장수했죠.

그 긴 시간동안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열심히 했기에, 엄청나게 많은 작품이 남아 있답니다.

 

피카소와 함께 큐비즘을 발전시켰던 조르주 브라크에게 피카소가 자신의 입체화를 처음 보여줬을 때, 조르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자네는 마치 우리에게 솜 뭉치를 먹이고 석유를 마시게 해서 불을 뱉어내게 하려는것 같군.

- 조르주 브라크

펠릭스 페네옹, 앙리 마티스, 무조건적인 지지자였던 기욤 아폴리네르 마저 그의 그림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오직 칸바일러만이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았다고 하네요. 친구들의 반응에 마뜩찮았던 피카소는 그 그림을 둘둘 말아 화실 한 구석에 처박아 놓았는데, 그 그림이 바로 <아비뇽의 아가씨들>이라는 본격적인 입체파 화풍의 계기였던 작품이었죠.

아비뇽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바르셀로나에 있고, 아비뇽의 인근 사창가 여성들을 모델로 표현했다고 하네요.

1935년경 첫번째 부인 올가의 초상화 앞에 선 피카소(왼쪽), <아비뇽의 아가씨들>. 1907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때까지 그림 속에서 볼 수 있었던 여자들의 모습은 대부분 여신급(?)이었고, 그래야만 했었죠.

하지만, 피카소는 달랐죠.

아주 오랜 시간동안 그림이란 대상을 모사하는 것이란 기성 화풍에 당차게 반기를 든겁니다.

기존의 관념을 깬 다는게 얼마나 힘든가에 대한 역사적 사례는 차고 넘칩니다.

남들이 모두 YES라 할 때, NO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자격이 있는거지요.

 

 

<출처 : 상동>

 

20세기 새로운 화풍의 미술을 시작하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2 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폭안에 다섯명의 아가씨들이 그려져 있는데, 익히 그림 속에서 보아왔던 여인들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여인들의 모습은 아름답기는 커녕 보기 흉합니다. 커다란 눈, 정면의 모습에 옆 모습의 코, 모가 난 얼굴, 비정상적으로 큰 발... 오른쪽의 두 아가씨는 몸이 찢어져 다시 붙어 있는 프랑켄슈타인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비뚤어진 코, 나는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사람들이 코를 보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 파블로 피카소

 

이 그림을 시작으로 큐비즘이 시작되었고, 현대미술도 따라 새 장을 열게 되었다고 봐야죠.

눈에 보이는 대상들을 분해하여 수 없이 많은 조각으로 나눈 뒤 그 조각을 여러 시점으로 바라보며 재 구성하는 큐비즘은 하나의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화면에 담은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큐비즘이란 용어는 앙리마티즈가 브라크의 입체화를 보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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