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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드라이. D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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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이하 사진의 출처는 동일합니다.

 

 

호주 영화로 2016년 제인 하퍼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로널드 코널리 감독이 각색하여 만든 작품입니다. 2020년 호주 멜버른 에서 최초 공개되었고, 2021년 AACTA(호주 시네마 텔레비젼 예술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각색상 수상하고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에 후보로 올랐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남주 역에 에릭 바나가 캐스팅 되었는데, 헐리우드 영화에 헐크로 등장해서 친숙한 배우지요.

소설 <드라이>는 2017년 골드 호주 도서상, 올해의 ABIA 문학상 등 주요문학상을 수상하고 영국에서 뒤늦게 발간될때는 '데뷔작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는 문단의 찬사와 함께 영국 장르문학 최대권위를 자랑하는 CWA골드대거상에도 노미네이트 되었던 경력으로 미루어보건데, 굉장히 섬세하고 훌륭한 묘사들로 점철되어 있을것으로 보입니다(직접 읽어보지는 못해서...).

 

 

영화의 배경이 일년 가까이 계속되는 가뭄으로 바짝 말라버린 호주의 키와라 마을이기 때문에, 화면 가득한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분위기가 시종일관 펼쳐집니다.

20여년만에 고향마을을 찾아오게 된(친구였던 루크가 아내 캐런과 아들 빌리를 쏴 죽이고 스스로 자살한 것으로 뉴스보도가 되고 있고, 남주는 루크와 캐런의 장례식에 참석차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죠.) 연방경찰 애런은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을 안고 있지요.

서로 막역하게 지내던 두쌍의 남녀는 애정 전선도 약간 꼬이며 서로의 가정환경 탓에 정서적으로 부딪히기도 하고 서로 아껴주기도 하면서 대부분의 청소년기가 그렇듯 애증의 시간을 지나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자살을 해버리고(나중에 자살로 밝혀지지만, 영화 종반부까지는 질투에 눈이 먼 루크가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갑니다.), 루크와 애런은 살인자로 몰리게 되자 서로 입을 맞춰 거짓 알리바이를 만들어 혐의를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좁은 지역사회에서 애런은 살인자(무죄추정의 원칙 같은건 공동체내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일단 돌팔매부터 하고 보지요... 동서고금을 통해 변치 않는 일인거 같습니다.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요. )라는 주홍글씨가 찍혀 견디지못하고 고향마을을 등졌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경찰이 되어 다시 돌아온 셈이죠.

과거 회상장면이 수없이 플래시백되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해결되지 못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애런은 한 소녀의 죽음과 관련된 등장인물들 모두를 의심하게 됩니다. 답답한 상황들이 반복되다 사건의 진실은 다소 허무하게 밝혀지지요.

서류를 조작해 돈을 빼돌린 사람(결국 돈 문제이고,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횡령을 한 것으로 설정하였더군요...)이 이 사실을 알게된 루크와 그 아내를 살해해 버린 것인데, 마을 사람들 각자는 자신들의 처지에서 다른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다보니 사건의 실체를 덮어 버린거였지요.

 

 

거짓으로 지어낸 일이 오랜 세월을 거쳐 마치 진실인양 호도되는 일은 현실에서도 적지 않습니다. 옷을 입을때야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결국은 나중에 알게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에서는 끝까지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걸 모를수도 있다는 얘기지요. 소설속에서는 이러한 서사를 문장으로 잘 표현해 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영화화하는 건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루크가 죽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어린시절의 기억과 함께 떨쳐버리지 못하는 애런의 모습을 클로즈업하면서 영화는 애런의 내면세계를 조명하려 애쓰는 듯 합니다. 애런의 입장이 되어 사건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따져보는 재미는 있을망정,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쭈욱 시달려왔던 죄책감을 떨쳐내는 정도로 클라이맥스를 설정하다보니 영화적인 카타르시스는 상당히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오해가 빚어내는 비극적인 상황들에 대한 작가적 묘사들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닥 다르지 않음은 여실히 확인되는 영화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언급되거나 조명을 들이대지는 않았지만, 가정내 폭력과 그로 인한 정신적 피폐와 갈등(투신자살로까지 이어지는..) 부분도 전세계가 엇비슷하다는 것두요...

가뭄으로 갈라진 바싹 말라버린 호수바닥처럼 각자 거짓말로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했던 이들 또한 사이가 갈라져 서로를 의심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끝내는 믿어버리는 거짓말같은 상황이 묘사됩니다. 믿고 싶은데로 믿는 것이지요.

 

 

에릭 바나의 듬직한 무게감이 런닝타임내내 느껴지긴 하지만, 자극적인 장면들에 익숙한 한국관객들이 호주관객들과 같은 반응을 보일지는 의구심이 들긴 합니다. 호주에서는 개봉당시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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