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끄적끄적

좋은 사람의 정의.

반응형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를 일컫는 말로 '386세대'라는 용어를 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지나면서 정치권으로 많이 유입되었던 진보적성향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을 일컫기도 했었지요. 지금으로치면 종북좌파라 비아냥 받곤하는 586세대들이지요. 서로를 프레임 씌워 자극적인 용어로 불러대는 정치선동은 정말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이런 저질 정치문화는 몇 세대가 지나도 없어지지 않을거 같네요.

 

고인이 된 전두환씨가 '당해보지도 않고 왈가왈부한다...'고 해서(이런 말을 언론에 떠들어대는 기개가 정말 감탄스러웠죠. 그것도 권좌에서 물러난 상태에서 말이죠...) 세간의 질책을 받기도 했는데, 군사정권시절의 분위기는 지금 시절로써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공포의 분위기가 감돌았었죠. 물론 그런 공포란 게 군사독재정권에 반발하여 민주화투쟁을 하거나 올곧은 소신을 굽히지 않은 사람들의 얘기고, 그 시절에도 권력자들에게 빌붙어 호의호식하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또한, 틈새시장을 놓치지 않고 독재자들의 선심을 사서 큰 부를 이룩한 사람들도 있었구요.

 

 

하지만, 그 시절엔 한국사회에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기준은 어느정도 명확한 편이었습니다. 미소냉전시대에 서로가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였지만,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한국에서는 공산주의국가가 단연코 나쁜 국가일수 밖에 없었지요. 선진국의 시선에서 바라본 당시의 한국은 군사정권에 장악된 독재국가의 모습이었을텐데 말이죠. 그건 현재 우리 시선에 비쳐진 동남아 군사독재국가의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었을겁니다.

 

 

시대는 바뀌어 불과 반세기도 지나기전에, 새로운 MZ세대들에겐 군사독재시절이 어떤건지 혹은 같은 민족끼리 죽고 죽였던 살육전쟁이 무엇인지... 이런 어마어마한 일들이 역사책에 몇 줄 적혀진 문장에 불과한 일이 되어버렸죠.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지사들이 고초를 겪었듯, 군사독재시절에도 민주화투쟁을 하다가 갖은 고문과 수감생활로 고생하셨던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수감생활을 끝낸 민주화운동 투사들은 마치 훈장처럼 수감이력을 등에 업고 하나둘씩 정치권에 발을 붙이고 세력화되어 마침내 정권의 꼭대기까지 올랐지만, 시대는 변하여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는 시절이 되어 있었죠.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단어들은 그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똥팔육'이니 '기레기'니 하는 단어들은 새삼 세월의 무게를 실감하게 합니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두려움을 참아내며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던 투사들과 정의롭던 기자들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몰락하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투쟁하던 시기만해도 좋은사람과 나쁜 사람의 구분은 확실했습니다. 비록 두려움에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총칼로 권력을 꿰차고 공포로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던 독재정권을 악의 무리로 생각했었고 자신들이 못하는 용감한 행동들을 하는이들에게 일종의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절대악이라 부를만한 대상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그말인즉슨, 절대선도 존재하기 힘든 시기란 얘기지요. 모두가 자기가 옳다 주장하며 내로남불을 뻔뻔하게 외쳐대지만, 그 또한 지극히 자의적인 해석에 기반한 일일뿐이죠.

 

누군가 "좋은 사람은 나에게 이로운 사람이다." 라고 했던 말에 격하게 공감하게 됩니다.

나는 누구에게 이로운 사람일까요? 나에게 이로운 사람은 또 누구일까요?

뜬금없이 옛날 생각이 나서 이런 저런 회상을 더듬다, 좋은 사람이란게 과연 뭘까하는 궁금증이 들어 끄적거려 봤네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