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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독후감] 예순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이순자 유고 산문집. 휴머니스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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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휴머니스트. 예스 24. 이하 사잔의 출처는 동일합니다.

 

 

나이 들어감에 굴하지 않고 생의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희망하며 남은 힘껏 애써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인간의 단면을 엿보게 됩니다. 살아가는 일은 어느 시간, 어느 세대에게나 그리 녹녹치 않은 것 같습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불안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현대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구요.

불과 한 세대 전만 돌이켜봐도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전쟁과 기아로 지옥같은 시간들을 넘어왔었죠. 그 이전 세대들에게선 더 끔찍했던 시간들이 존재했었던 것 같구요... 하지만, 결코 잊혀져서는 안될 그 세대들의 흔적이 조금씩 스러져 가고 있는 듯 합니다. 망각이란 유용함이 있어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반면, 또한 해서는 안 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지요....

 

 

얼마 전, 95세까지 현역으로 일하시다 별세하신 '원조 국민 MC' 송해 님의 경우는 초고령사회라는 전대미문의 현상을 맞이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삶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답지 하나를 알려주고 있지요. 송해 님의 연령을 고려해 본다면 지난했던 한국근대사의 파란만장했던 일들을 모두 겪으셨을테지요. 지금으로써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불합리한 일들과 궁핍하고 초라했던 모습들을 고스란히 경험하셨을 테구요.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며 사셨을 겁니다.

9988234... 이 암호같은 숫자가 무얼 의미하는지는 다들 아시죠?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죽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강한 마음과 육체는 필수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갖은 질병으로 고통스럽게 삶을 연명해야 하는 시기가 무려 13년 가량 된다고 합니다. 평균 생존기간이 80여년임을 감안할 때 60대부터는 온갖 질환에 시달리게 된다는 얘기지요. 누군가는 이러한 질병으로 고통받게 되는 기간을 늘어난 수명의 역설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송해 님의 경우를 보면, 현업에서 활동적으로 일하는 것이 얼마나 건강한 장수에 중요한 지를 알수 있지요. 저성장시대에 접어든 한국사회는 젊은이들도 마땅한 직장을 잡지 못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서, 은퇴 후에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현역처럼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거 같습니다. 사회문제이자 해결책을 고민해 봐야할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지요.

 

 

이 책은 황혼 이혼이후 62세의 고령으로 취업전선에 나선 경험을 담은 <실버 취준생 분투기>의 저자 이순자 작가님의 유고 산문집입니다. 뒤 늦게 뛰어든 문학세계에서 나름의 흔적을 남기고 가셨지만, 좀 더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하고 영면하신 점은 참 안타깝네요.

청각장애로 인해 고통을 겪으면서도 호스피스병동에서 자신보다 더 아픈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에서 험난한 생을 살아오면서도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깊이를 지닌 성숙한 인간으로써의 향기를 진하게 느낍니다.

 

 

 

책에 실려있는 많은 이야기 속에서 평범한 듯 하면서도 비범한, 그러면서도 우리 주변에서 함께 숨쉬고 지냈던 이전 세대 어르신들의 일생이 끈적하면서도 애정어린 눈길로 잘 요약되어 글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나 '씨받이'란 영화도 있을만큼 부끄러운 흑역사속을 몸소 지나온 할머니의 애달픈 사연을 담은 글을 읽을 때는 복잡미묘한 느낌이 교차하더군요. 마치 잊혀져가던 어린 시절의 결핍과 갈증이 막연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맞아, 그땐 정말 그랬었지.'.. 싶은, 작금의 풍요로움 속에서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하나둘씩 어렴풋이 기억나기도 하더라구요.

글이 전해주는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책이었습니다. 문학이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케이팝 속에서 몰입하여 즐기는 그 무언가와 비슷한 것 아닐까싶기도 하네요. 거기에 개인적인 서사까지 연동되어 한 때나마 자신을 되돌아볼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하게 세상에 기여하고 있는 거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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