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동안 고령에도 불구하고 액션영화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노장의 투혼을 불 사르던 리암 니슨이 훈훈한 가족영화로 돌아왔네요. 영화의 전체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충분히 예상이 될 만큼 클리셰가 다분히 많은데다, 현란한 액션씬과 자극적인 장면에만 길들여진 관객이라면 몸을 비비 꼬며 지루해할수도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에 카메라를 들이민 듯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주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보았는데요 흡인력이 대단하네요. 꽤나 매력적인 외모에 다양한 표정연기가 관록의 리암 니슨에 전혀 꿀리지 않구요, 영화가 시작하고 오래지 않아 두 부자가 주고받는 대화의 담백함이 꽤나 영화가 재미있을것 같은 느낌을 주지요...^^



영화 속으로 '외디푸스 콤플렉스'와 그와 연관된 미묘한 부자간의 심리역학, 그리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참으로 깔끔하게 스크린에 옮겨 담았습니다.
심리학에서 프로이드의 영향력은 가히 상상력을 초월할 정도이지요. 그만큼 그가 주장했던 여러 이론들이 현대심리학에서는 많은 이의제기를 받고는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넓고도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고 보입니다.
한때 심리학에 심취하여 정말 많은 관련책을 읽어보고 고민도 했지만, 심리란 게 천차만별의 다양함 때문에 이 분야만큼 제대로 된 체계가 없는 것도 많지 않을 듯 합니다.


부자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실감이 들더군요. 우리 세대만 해도, 집에서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아버지란 존재는 한 집안에서는 절대적 권위의 상징이었죠. 그러한 권위는 무뚝뚝하고 과묵한 이미지를 병행하는 경우도 많았구요. 물론 그 시절에도 자상하고 자식바보같은 아빠들도 있었겠지만요...
지금은 외벌이부부들이 더 적을 것 같은데, 한 세대 전만해도 상당수의 집안이 외벌이였고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오고 어머니는 집안살림을 운영하는 것이 기본적인 가족의 구조였었죠. 먹고 살기위해 사회라는 정글 속에서 부대끼고 치이다보면, 아버지와 아이들간의 관계형성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죠.
영화 <메이드 인 이태리>는 재능있는 화가의 가슴아픈 가족사를 배경으로 초록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이태리 코스타나 지방의 낭만적인 자연속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런던에서 아내집안이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가던 남주가 이혼 위기에 몰리면서 갤러리에서 쫓겨날 상황에서, 갤러리를 인수하기 위한 자금마련을 위해
아주 오래전 떠나왔던 이탈리아의 고향집을 수리해서 파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화이긴 하지만, 저런 곳에서 살면 너무 좋겠다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하는 아름다운 풍광들에 두 눈이 쉴새 없이 즐겁습니다. 이탈리아만의 지역색이 스며들어간 장면들도 가만히 미소짓게 합니다. 졸부인 듯한 커플이 천박하게 돈지랄할때 묵직하게 한방 먹이는 메타포 가득한 대사들도 재미있었구요... 자신만의 꿈을 좇아 좌충우돌하는 젊음의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또 그럴수 있는 여유로움(?)이 헬조선이라는 한국의 청년실업 사정이 떠 올라 조금은 부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억지스럽지 않게 끌어가는 부자간의 화해장면들이 참 좋게 느껴졌구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나 그 아들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혹은 느끼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괜시리 가슴 뭉클하더군요.
한때는 서로 좋아 결혼하고 자녀까지 가졌지만, 무슨 이유에서건 서로에게 상처를 진하게 남기고 헤어지기도 합니다. 합의이혼에 이르지 못하고 재판을 거치며 서로를 물고 뜯는 상황까지 가게 되면 더 곤란하지요... 그래서인지, 영화말미에 남주는 순순히 합의이혼 서류에 싸인을 해서 아내에게 건네며 이별을 고합니다. 그리고는, 그토록 갖기 원했던 아내집안 소유의 갤러리를 과감히 포기하지요. 이때까지도 아내는 남편 좋아하는 꼴은 못 보겠다는 굳은 의지로 너에게 갤러리를 절대 팔지 않겠다는 속셈이었지만 말이죠...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유행가 가사도 있지만, 현실은 아마 남보다 훨씬 무서운 그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요...그 누구보다도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내에게 합의 이혼 서류를 건넨 것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쿨한 제스쳐였지요. 우여곡절끝에 회복한 아빠와의 관계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새로운 연인과의 시작은 남주가 진정 원하는 삶이 어떤 모습인가 혹은 어떤 모습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깨달음을 준 듯 보입니다.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과정들에 대한 파스텔톤의 간결한 묘사들은 삶의 버거움을 외면한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영화로 즐기기엔 딱 적당한 수준이었죠. 부드러운 미소를 띄며 훈훈해지는 가슴 한 구석의 온기를 느끼며 기분 좋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리뷰] 매트릭스 : 레져렉션 (2) | 2022.01.07 |
---|---|
[영화 리뷰] 스틸 워터. Stillwater. (5) | 2021.12.30 |
[영화 리뷰] 아케인(Arcane). 넷플릭스에서 돌풍을 일으킨 애니메이션. (1) | 2021.12.24 |
[영화 리뷰] 루카. Luca.2021 (8) | 2021.12.16 |
[영화 리뷰] 언더 더 스킨. Under the Skin. (6) | 2021.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