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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 나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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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뼘책방. 예스 24. 2020년 11월

 

저자 나익주는 영어영문학과 출신으로 박사학위까지 취득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 언어학과 객원학자로 은유와 인지언어학을 공부했다고 해요. 지금까지 자신의 전공분야와 관련하여 꽤 많은 저서를 썼는데,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딱딱하게 여겨질만한 주제의 책들이 대부분이네요.

 

은유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 조지 레이코프

 

1990년의 마지막 날, 1차 걸프전을 앞두고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보수언론이 임박한 전쟁을 은유를 통해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려는 현실을 알리기 위해 조지 레이코프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의 경고는 안타깝게도 분위기에 휩쓸려 묻혀버리고, 미국의 수 많은 젊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정의로운 전쟁에 참여하여 죽었죠. 이후 밝혀진 일이지만 별다른 명분도 없는 정치적 프레임에 속아서 말예요.

 

조지 레이코프는 인지언어학을 창시한 분입니다. '프레임 이론'으로 미국 정치담론을 분석해서 명성을 얻었죠. 정치세계에서는 '프레임'이란 용어가 밥 먹듯 쓰여집니다.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개체는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천차만별입니다.

이런 사실에 능통한 정치세력들은 끊임없이 '프레임'을 생성해 내며 사실을 왜곡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판도를 형성하려고 하지요.

 

@pinewatt/unsplash

 

한국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보면, 민중에게 있어 주적의 개념은 시대별로 바뀌었지요. 일제시대엔 일본이라는 제국주의국가가 군사독재시대엔 독재권력이... 그리고 현재는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적폐세력들이 그것들입니다. 하지만, 선명하게 부각되는 타파해야 할 주적이 사라지고 나면 오히려 혼란의 시대가 찾아듭니다.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소련이라는 거대세력이 자멸하고 나서, 온 국민을 하나로 통일 시킬수 있었던 프레임을 잃어버린 미국은 '테러'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찾아냈죠.

 

정치학적 전술로서 영호남을 갈라 서로 싸우게 했던 군사독재세력들의 기만전술은 아직까지도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불균형을 초래한 지역발전 상황으로 그 당시의 프레임에 묶여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대들도 있지요.

 

빠르게 변화를 겪는 현대인들의 습성 상, 동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간에도 현격한 의식의 차이가 도드라지게 발현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독했던 일제시대를 경험했던 세대들이 차츰 사라지고, 엄혹했던 군사독재 정권 시절을 온 몸으로 부대껴 왔던 세대들이 주류정치세력으로 부상했던 지난 세월에 내 건 '적폐청산'이라는 프레임은 취직난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공감대를 얻어내기 힘든 주제인 듯 보입니다.

 

세대간의 현격한 의식구조의 차이는 지난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의 결과를 보면 더욱 분명해 보입니다.

현 정권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겼던 독재정권과의 투쟁경력은 군사독재가 무엇인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겐 신기루와 같은 의미없는 것들이죠. 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혹독하게 시집살이를 했던 며느리가 나중에 더 지독한 시어머니 노릇을 한다고 하지요.

 

@pietruszka/unsplash

 

지금은 사라진 '국민학교'란 단어... 초등학교를 대신했던 이 단어 속에 국민'이란 글자가 의미하는 일제의 잔재... 국민학교 시절만 해도 최영 장군의 "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는 말...

어느 시절엔가 들려 왔던 "부자 되세요~~"란 CF 속 모델의 속삭임...

사실 어느 시대건 부와 권력을 탐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었을 거예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포기하는 사람은 있을 지언정...

 

'입시는 전쟁' 은 학생을 전사로 취급하고,

'세금은 폭탄'은 세금을 피해야 할 것으로 인식하게 하며,

'젊은 여성은 영계'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한국 사회에는 '프레임'이 일상어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만큼 프레임을 통해 한국의 현실 분석이 가능하고, 대안 프레임 제시도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좀 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프레임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제시하는 이 책은 읽기에 그리 재미난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흔히 학자하면 연상되는 고리타분한 이미지와 말투는 말을 번지르르 하게 잘 하는 강사들과는 다르게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고역스러울 수도 있지요. 실제로 학식의 깊이와 가르치는 기술 간의 격차는 꽤 크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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