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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마취제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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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제의 역사는 웃음가스로 시작했다고 한다.

인간에게 있어 통증은 소중한 방어기전이기도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기에 피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전 세계의 최신식 설비가 갖춰진 병원 수술실 안에서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수술이 한창 진행중일 것이다.  생 살을 가르고 부러진 뼈를 맞춰 쇠조각으로 이어붙이는 무서운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는 깊은 잠에 빠져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최신까지 계속 업그레이드 되어 온 마취제의 도움 덕분이다.

 

@nci/unsplash

마취제가 개발되기 전의 수술장면을 한번 상상해보라.

불과 두 세대 전의 일들이다. 하긴 그 당시는 고통을 참는데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이골이 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할 마땅한 장비도 없었으니, 오직 다치고 상했을 것인가...

그 당시의 수술이라면 대개는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상황이었을 터이고, 수술을 통해 사망하는 일은 흔하디 흔한 일이었을 것이다. 환자들은 통증으로 인해 쇼크사를 하거나, 과다 출혈로 죽었을 것이다. 수술 후 운이 좋게 살아났다해도 이후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죽을 수도 있었다. 이 모든 위험을 모두 이겨내고 수술 후 살아 남은 사람은 정말 강인한 생명력의 소유자들 뿐이었다.

당시의 수술 장면은 대개 보조자들이 완력으로 환자를 붙잡고 있거나 움직이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놓고 했을 것이니 거의 고문장면과 구별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환자들이 지르는 비명 소리때문에 병원의 수술실은 탑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입에 나뭇조각을 물고 고통을 참으며 수술을 받는 장면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대부분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지만, 영화이기에 가능한 얘기일 뿐 아마 현실에서는 거의 다 사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하는 이유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과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인륜의 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출처 : 네이버 이미지. 포토뉴스

 

아마도 수술에서 살아남는 경우는 대개가 팔다리를 자르는 수술의 경우였을 것이고, 개복수술의 경우는 감염문제 때문에 생존이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의 수술에 있어 생존율에 영향을 미쳤던 절대적인 요소는 무엇보다도 빠른 수술 속도였다. 18세기 영국 런던대학 병원의 한 의사는 당시에 가장 빠른 수술 시간을 자랑하였는데 다리 하나를 절단하는 수술을 2분 30초만에 끝낼 정도였다고 한다.

 

@miguel_photo/unsplash

19세기 초에는 외과수술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아편과 술 그리고 얼음을 사용하기도 했다. 술에 잔뜩 취해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서 수술을 하거나 차거운 얼음으로 마비시켜 통증을 줄여주는 식이었다. 옛날 영화를 보면 술을 먹이고 수술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아주 없는 얘기는 아닌 것이다. 어떤 코미디 영화에서는 각목으로 머리를 때려 기절시킨 후 수술하는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한 세기가 지나기 전에 소독법과 마취제라는 의학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 이뤄짐으로써 수술장의 모습은 천양지차로 바뀌게 된다.


최초의 마취제였던 아산화질소 N2O는 웃음가스로 불리는데, 이 가스를 들이마시면 미친 듯이 웃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1775년 조지프 프리스틀리가 최초로 합성한 이  가스는 당시 기술로는 정제가 완전하지 않아 불순물 질산이 포함되어 독성이 있었다고 한다. 1800년 험프리 데이비가 아산화질소의 마취효과를 처음 밝혀냈는데, 정제된 순수한 아산화질소를 들이마시면 웃음이 나면서 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하지만, 40년 넘게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수술에 적용해 본 사람은 없었고, 웃음효과를 노리고 파티에서 소동을 벌이는데에나 쓰여지고 있었다.

웃음가스를 마시고 까불고 놀다가 다친 사람이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노는 것을 지켜 본 치과의사 호레이스 웰스에 의해 최초로 의료시술에 웃음가스가 사용되었다. 한달 반 동안 웃음가스를 들여 마시게 하고 사랑니를 4명에게서 뽑은 것이었다. 이 발견을 의학의 중심지 보스턴에서 공개 실험을 했는데, 지원자는 이를 뽑을때 아프다고 고함을 질러 웰스를 당황시켰다고 한다. 웰스는 순식간에 웃음거리의 대상이 되어 치과의사마저 그만 두어야 했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블루앤치과 블로그

웃음가스는 지금도 아이들의 치과치료시에 사용되고 있다. 수술 초기 마취상태로 들어갈 때나 끝날때 다른 약과 같이 사용하면 마취시간을 조절하기가 수월해지고 부작용이 적기 때문이다.

크게 낙심한 웰스는 포기하지 않고 웃음가스와 다른 마취제 클로로포름을 자신에게 생체실험하기까지 했는데 그만 클로로포름에 중독되고 말았다.  중독되어 행인 2명에게 상해를 가해 감옥에 갇힌 웰스는 33세살의 나이로 동맥을 그어 감옥안에서 자살한다.

마취제를 최초로 발견했던 웰스의 비참한 삶은 이후 후학들에 의해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의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었고, 1870년에 미국 치과협회는 웰스가 최초의 마취제 발견자임을 공식 선언했다. 의학의 역사를 보면 이런 일은 의외로 비일비재하다.


에테르 Ether는 알코올을 가수분해하면 쉽게 만들수 있는데, 파라켈수스가 에테르가 마취효과가 있음을 최초로 발견하였고 수술에 최초 적용한 사람은 역시나 치과의사 윌리엄 모턴이었다. 손수건에 에테르를 묻혀 코에 갖다대면 몇 분안에 무감각해지는 것을 확인 한 것이었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말금이의 블로그.

 

그리하여 1846년 10월에 매사추세츠의 한 병원에서 목에 종양이 있는 환자의 수술이 시행되었는데, 모턴이 에테르로 종양환자를 마취시킨 후 수술이 진행되었다. 수술은 대 성공이었고, 아프다고 고함치는 일도 없었다. 이 날의 수술은 의학의 역사상 인류가 고통을 조절할 수 있게 된 의미있는 날이었고, 이 날은 '에테르의 날'이라고 불렀다.

이 수술의 성공으로,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많은 수술을 앞둔 환자들은 에테르로 마취하고 수술받기를 희망했다. 문제는 에테르의 인화성으로 인한 폭발의 위험이었다. 낮은 발화점으로 폭발에 취약한 에테르는 양초의 열이나 작은 스파크에도 쉽게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금세 평판이 악화되었고, 모턴은 낯선 사람에게 공격을 받아 사망하게 된다.

마취제 발견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두 치과의사의 삶은 마치 저주받은 듯 비참한 종말이었다.

이후, 더 나은 마취제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계속하였다.

스코틀랜드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프슨은 우연히 클로로포름이 마취작용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는데, 에테르보다 마취속도가 빠르면서도 인화성은 훨씬 적었다. 심프슨이 임산부를 클로로포름으로 마취한 후 제왕절개수술을 했는데, 고통이 크게 줄어 들었음을 확인하였다.

 

@sharonmccutcheon/unsplash

 

하지만, 이번엔 종교계에서 태클이 들어왔다. 출산의 고통은 모성애가 강해지는 계기요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 먹은 벌로 여자에게 준 것인데 클로로포름으로 산고를 줄이는 행위는 신에게 저항하는 짓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으로써는 황당한 얘기지만, 그 당시로써는 충분히 수긍이 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출산 때 클로로포름으로 마취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 마취제는 급속도로 사용자가 늘어갔다고 한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수 많은 부상자들이 속출했고, 전쟁터에서는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수술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수술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클로로포름을 흡입마취제로 수술한 경우 약 0.5퍼센트의 확률로 간독성과 심실세동으로 인한 사망사례가 발생하였다. 어짜피 전쟁상황에서는 수술은 최후의 수단이었고 수술 중 사망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어서 클로로포름의 독성은 전시 동안에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었다. 하지만, 클로로포름의 이런 간독성과 심실세동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확인되자 서서히 마취제로 사용되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고, 새로운 마취제를 찾는 연구들이 계속되었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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