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9시간 노동 권고... "주 단위 아닌 연 단위"

현행 주 52시간 근로제는 일주일당 기본 근로 40시간에 연장근로 최대 12시간을 더해 근로자들의 일주일간 노동시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과로로 인한 노동자들의 건강권 침해와 이에 수반되는 문제들의 발생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지요.

 

 

요번에 윤석렬 정부하에서 미래노동시장 연구회의 권고문 발표는 기존의 주 52시간 근로제의 근간을 대폭 수정하여,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취지는 지금보다 더 유연하게 일하자는 것이지요.

4주 208시간을 일할 경우 기존제도하에서는 1주일단위로 끊어서 매주 52시간까지 일할수 있지만, 권고안대로라면 매주 69시간까지 일하고 긴 휴식을 취할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일주일의 휴가를 갖기위해서는, 매주 17시간을 더 일해야 하는 셈인데 매일 하루 3시간도 넘는 시간을 3주간 더 일해야한다는 거죠. 주4일제 얘기가 나올락 말락 하는 시기에 완전히 거꾸로 가는 발상이 아닐수 없죠.

최대 연장근로시간 권고안을 보면 분기와 반기 등 기간이 길어질수록 최대연장근로시간을 줄임으로써 부작용을 줄여보려고 애썼다는 흔적을 보여주려고 했는데요, 현장에서는 암암리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해 보이는 건 저 뿐만은 아닐겁니다.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대기업이나 견실한 중소기업들이야 정부정책에 반발할 수 없겠지만, 이런 급작스런 변화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목구멍이 포도청인 이들이 사용자의 요구에 법률 들먹이며 이의를 제기하는게 쉽지 않을껀 뻔하죠...)에겐 또 다른 착취의 근거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스럽네요.

 

 

 

집중적인 근로를 가능하게 하되 총량의 근로시간은 줄여나가는 것이 저희 연구회가 기대하는 효과입니다.

- 미래노동시장 연구회, 권혁 교수

 

연구회는 또 지금까지의 호봉제도는 임금격차면에서 불합리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권고하기도 했는데요, 고용노동부는 이런 권고안을 받아들여 숙고한 뒤 올해 안으로 관련 법규를 가다듬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년차가 높다고 일은 적게하면서 훨씬 더 힘들게 많은 일을 하는 낮은 연차의 노동자보다 많은 임금을 수령해가는 것은 공정치 않다고 바라보는 것이지요. 연공서열을 완화해서 고령화되고 있는 노동시장의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취지도 엿보입니다. 호봉제로 재미보던 높은 년차의 노동자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겠네요...

 

 

그러다보니, 인터넷과 SNS상에는 벌써부터 갑론을박으로 시끌시끌하군요.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도 있을거고 버럭 화를 내고 있는 분도 있을거고...

한국노동조합 총연맹은 12일 성명서를 통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처사라고 비판했고, 전국경제인 연합회는 찬성의 뜻을 비쳤습니다. 뭐 당연히 예상되는 반응이었구요, 권고안의 내용이 대부분 법률개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여소야대' 국회를 통과하는 건 그리 쉽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