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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옥동과 동석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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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몰아보기는 기다림 없이 다음화를 볼 수 있어 좋기는 하지만, 또 나름의 단점도 있는 것 같아요. 이미 손 안에 모든 걸 움켜쥐고 있으니 귀하게 여기는 맘이 적어진달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엔딩장면에서 보여주는 그간 등장인물들과 촬영스텝들의 모습을 통해 참 고된 역정을 지나오며 명품 드라마 하나를 세상에 내 놓았구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처럼, 영화나 드라마처럼 영구히 남아있는 작품을 멋드러지게 만드는 일도 참 뿌듯하고 행복한 일일거 같아요. 그래서 박봉과 고된 일임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창작활동에 매달려 애쓰고 있겠지만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사명 하나.

우리는 이 땅에 괴롭기 위해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

-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엔딩 자막

 

 

출연진 모두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며, 최상의 연기력들을 뽑아낸 듯합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예상했던 대로 옥동(김혜자 분) 동석(이병헌 분)이 그간의 해묵은 악감정을 씻어내고 모자간의 정을 회복하는 과정을 꽤나 드라마틱하게 그려냅니다.

 

 

의붓형이 이사를 했음에도 알리지 않아 예전 살던 집으로 찾아가게 된 옥동의 모습에 동석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게 됩니다. 지난 세월 첩의 자식으로 겪어왔던 설움에다가 살갑게 대하지 않는 의붓형들에 대한 악감정이 겹쳐졌으니까요.

탐탁치 않게 의붓아버지의 제사에 참석하기는 하지만, 동석은 술 한잔 올리지 않고 데면데면하며 있고 의붓형 또한 못마땅해 죽을것 같은 표정입니다. 놀랍게도 의붓형은 자신의 사업실패로 가산을 탕진하고 그 끝에 아버지가 쓰러졌음에도, 동석이 패물을 훔쳐 가출했던 일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가 쓰러졌다고 믿어왔음이 드러납니다.

서로에 대한 원망으로 제삿날 두 의붓형제는 크게 싸움을 벌이고 동석을 욕하는 전처자식에게 참아왔던 말들(의붓형의 두 부모의 병수발을 십수년 했었던 옥동은 의붓형에게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었죠...)을 뱉어내는 옥동의 모습... 첨 보는 그 모습에 두 의붓형제는 모두 당황하죠.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본 상황은 똑같은 일임에도 완전히 다른 온도로 각자에게 각인되어 있었죠. 세상 가장 쉬운 일이 남탓이라고, 의붓형제들은 모두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자신들에게는 한 없이 포용력 넘치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 같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도 그런 면이 없다고는 못할 거 같네요.

어린시절의 두 이복형제들은 첩과 첩의 자식으로 자신의 집에 기생하여 들어오는 동석과 옥동을 '거지새끼' 처럼 여겼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자신들의 구타 또한 철없던 시절의 상처와 한풀이 정도로 여기며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말종처럼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결코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보지도 않은 이들 이복형들의 모습은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일부 현대인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네요.

 

 

동석은 옥동이 왜 자신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슬픔이 너무 크면 울음조차 나오지 않고 상처가 너무 크면 차마 그것을 들여다 볼 용기조차 없을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것으로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옥동이 스스로를 '미친 년'이라 얘기하는 걸 듣고서 말이죠.

 

동석 : 나 한테 남은 건 ... 어멍...엄마뿐이었는데,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그때 어멍은 마지막 남은 어멍까지 빼앗아 간거야... (거의 울먹이며...)..나 한테 그래놓구 뭐..미안한 게 없어...어떻게 나한테 미안한게 없어...

옥동 : (촛점없는 시선으로 앞만 쳐다보며) 미친 년이 어떤 미안할 걸 알어...(천천히 동석에게 고개를 돌리며..) 니 어멍은 미친 년이라...(감정에 북 받친 듯..) 미치지 않고서야 바다 무서워하는 딸년을 물질시켜 쳐 죽이고 그래도 살려고 아무한테나 붙어먹고...그저 자식이 세끼 밥만 먹으면 사는 줄 알고...좋은 집에 학교만 가면 되는 줄 알고...자식이 처 맞아도 멀뚱멀뚱... 너 나 죽으면 장례도 치르지 말아라...

 

그 시절, 먹고 살 방도를 찾지 못한 힘 없는 엄마가 자식이 따뜻하게 먹고 잘 수만 있다면 그 밖의 일은 어느 정도 참고 살수 있을거라 잘못 판단했고 늘 그점을 죄스럽게 여겨 스스로를 '미친년'으로 자책하며 살아왔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죠.

 

 

비극적인 상황에서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고 말았던 흑역사로 인해 견고하게 쌓아 올려진 것처럼 보였던 얼음벽이 소리없이 녹아내리며 까칠하기 그지없던 동석도 조금씩 옥동에게 다가섭니다.

엄마라 부르기도 하고, 원하는 일들을 들어주려고 애쓰죠. 우연챦게 내려온 사랑하는 사람과도 조우하고, 옥동에게는 세상에 태어난 이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선사합니다.

조금 안타깝지만 드라마는 동석과 옥동이 극적으로 화해한 다음날, 동석이 좋아하는 된장찌게를 한상 차려놓고 옥동이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둘의 에피소드를 마무리 합니다.

 

 

20회를 통틀어 처음으로 나레이션을 통해 동석의 생각을 드러내는데요, 한 인간이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해 내는가를 너무도 잘 표현한 심리학 표본과 같은 장면들이었네요.

우리들은 모두 타인의 모습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며 살아갑니다. 때론 부러워하기도 하고, 때론 손가락질 하기도 하며, 서로가 엇 비슷한 감정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임을 확인하곤 합니다.

한꺼풀 벗겨보면 확연히 다른 색깔의 속살이 드러나는 양파나 마늘처럼, 우리들 모두는 갈색의 페르소나를 입고 살아가고 있죠. 인간의 내면 깊숙히 자리한 그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듯한 작가의 심구안이 느껴지는 훌륭한 힐링 드라마였던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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