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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마흔의 우울. 임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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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매진. 예스 24. 2019년 10월

 

출간한 지 5개월에 접어들지만, 예스 24에 올라온 독후감은 꼴랑 1편.

얼마나 많은 40대들이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는지는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으니 알 길이 없지만, 마음의 감기라는 우울증은 참으로 무서운 질환이다.

 

자살자의 상당수가 우울증을 앓은 전력이 있다.

임재아씨는 정신상담을 통해 자신이 우울증에 빠져 있음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물론 어느 정도는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생각보다는 처참할 정도로 심각하게 진단이 나온 것이다.

 

직장과 가정에서 따뜻한 위로와 인정을 바라는 그에게 누구도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주변에는 그와 똑같이 인정받기 만을 바라는 똑같은 이들이 똑같은 욕망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anthonytrain/unsplash

 

어처구니없지만, 두 사람이 서로의 얘기는 듣지 않고 자기의 얘기만을 하고 있는 대화의 현장과 다름이 없다. 안타깝게도 끊임없이 인정을 갈구하는 임재아씨에게 누구도 따스한 위로의 말을 해주는 이가 없었다.

 

임재아씨는 독서와 운동을 통해 좀 더 나은 자아상을 확립하고 현 상황을 타개해 나가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책의 말미에 그는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 그림, 운동처럼 손에 잡히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런 경험이 우울증과 불안증에 빠진 나를 꺼내 줬다.

저 깊은 곳에서 빠져나오니 아내가 서 있고 아이들이 보인다.

힘들어하는 중년들이 눈에 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P268

 

임재하씨는 374권의 책을 읽으며, 조금 성숙된 나를 느끼며 실생활에서도 뭔가 달라진 것을 기대했지만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강의도 들어보고, 그림 그리기에도 빠져 보고 상담도 받아 봤지만 그래도 현실은 제자리에서 달라지지 않는다.

 

그의 현실은 그가 지난 시절 쌓아 왔던 시간들의 결과물들이다.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타고난 그의 본성과 함께 현재의 그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아픈 추억들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들이다.

즉, 좋았던이다.

 

@tjump/unsplash

 

우리 시대의 40대들은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낸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한창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는 시기여서 혹자들은 넉넉한 가정환경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상당수는 그리 부유하지 않았던 어쩌면 상당히 가난했던 집 안에서 조금은 지질하게 컸을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빈한하다 해서, 꼭 정신적으로까지 초라하란 법은 없지만 대개는 자신이 가진 부에 따라 외부에서의 목소리 크기도 정비례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유교적 사고방식이 강하게 박혀 있었던 아버지 세대들은 현대식 자녀교육에는 전혀 앎이 없었고 시대는 정신없이 빠르게 변해갔다.

 

 

 

임재아씨는 그리 행복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등학교 때는 큰 아버지 댁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눈칫밥을 먹었다.

평범한 대학생활 이후 작은 회사에 다니면서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으로 생활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살아오고 있다.

 

문제는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하게 되었고, 덩달아 회사생활도 언제 구조조정에 의해 짤릴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 되어 있고 모든 상황들에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란 점이다.

 

@kellysikkema/unsplash

 

누구나 이런 상황이 되면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여 이런 상황들이 평범한 40대 한국 남성의 현주소라면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저 몇 사람의 예외적인 경우이길 바랄 뿐이다.

 

책에 쓰여진 바에 따르면, 임재아씨는 대단한 악처를 만났다.

소크라테스의 악처만큼이나 독한 그녀는 그를 거의 노예 수준으로 학대한다.

물론 모든 얘기는 양측의 말들을 모두 들어봐야 정확한 전후 사정을 판단할 수 있다.

그의 아내 얘기는 그가 하소연하는 얘기와는 정확히 반대 상황을 가리킬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중간중간 자신이 잘못했던 부분에 대한 반성도 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모든 싸움의 원인은 한쪽에만 있는 경우는 드물다.

책 초반에 거의 악마 수준으로 험담하던 아내에 대한 얘기도 중반 이후에는 조금은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변하기도 하고 책 말미에는 자신의 잘못도 어느 정도 인정하기도 한다.

 

내 지인 중에도 거의 우울증 수준의 여자와 결혼하여 짧은 결혼생활 끝에 이혼한 사람도 있다.

재혼한 이후엔 두 아이들을 키우며 잘 사는 걸 보면, 첫 번째 결혼의 문제는 주로 여자 측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자신이 겪어 온 경험에 의해 정상적인 결혼 생활이 힘들 정도로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사람도 있긴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은 커다란 상처를 안고 결혼생활을 파국으로 마무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ericajamesward/unsplash

 

그 사람이 처한 환경에 직접 접해보지 않고 그 사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어쩌면 옳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상대를 몰아세우며, 잔인하리만큼 상처를 헤집는 악순환은 마치 브레이크 고장 난 기차와 같다.

이들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현실이 아슬아슬하다.

두 아이들이 그 와중에서 받을 스트레스나 상처들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이다.

 

 

흔히들 책은 잘난 사람들이 낸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 철학자, 소아정신과 의사 등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 인사들이 쓴 책을 읽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 견줄 만한 지식과 경험이 없다.

                                - 임재아

 

 

 

임재아 씨의 말처럼 이런 글들이 책으로 엮어진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고 의외였다.

지극히 사소하고도 내밀한 사생활이...

마치 맨 정신으로는 풀어낼 수 없었던 이야기를 술자리 사석에서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yrss/unsplash

 

듣기만 해도 가슴 답답해지는 이런 얘기를 끝도 없이 반복하며 정말 두서없이 글을 써 댔다.

그런 글들을 마감도 하지 않은 듯 날 것 그대로, 편집도 제대로 하지 않은 느낌이다.

마치 술주정을 하며,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는 넋두리 같다.

 

그러면서도 해결책은

 

조금은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큰 생채기를 내어 놓았다.

 

너무나도 내밀한 자기 고백에 한 인간의 진솔한 감정선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들에 대한 신랄한 표현들이 어쩌면 읽는 이에게 공감을 이끌어 낼지 모르겠다.

또한, 나는 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아'라고 내심 자신의 상황과 비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쉴지도 모르겠다.

 

@ericajamesward/unsplash

 

"너 정신이 이상한 것 같아. .... 한번 써봐."라는 아내의 말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향기 나는 문체도 아니고,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닌... 울퉁불퉁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글들을 읽어나가며 임재 아씨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는 늘 '인정' 을 원했다.

 

구조 조정의 위기에 시달리고, 육아에 시달리고, 아내와의 불화에 시달리는자신에게 그래도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그에게 그래도 "고생하고 있다."는 위로의 말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로는 왠만해서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인정이 밖에서 주어진다고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님을 임재아씨는 모르는 듯했다.

그것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받지 못했던 부모로부터의 사랑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린시절 충분한 인정과 사랑을 부모로부터 혹은 양육자로부터 받은 이는 성인이 되어서는 더 이상의 외부로부터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 어린시절에 받아야 할 만큼의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평생을 통해 그 인정을 받기 위해 채워질 수 없는 쓸데없는 욕구를 가진다.

                                                                 - 에드워드 쇼어

 

 

안타까운 일이다.

 

탤런트 김혜자씨는"꽃으로도 애들을 때리지 말라."고 했었다.

 

짧은 어린 시절의 삶이 평생을 좌지우지하는 걸 모르던 세대들이, 즉 자녀들을 올바로 양육할 준비가 안 된 세대들이 양산한 불행한 중년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여 맴찢 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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