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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Hope G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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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이하 출처는 동일합니다.
 

 

사막위에 세워진 유흥도시 '라스베가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경으로 한 갱 영화 <벅시>를 제작했던 워렌 비티는 헐리우드에서도 유명한 바람둥이였다고 하죠. <벅시>를 통해 만났던 21살 차이의 워렌비티와 아네트 베닝은 결혼으로 이어졌고, 아네트 베닝의 헌신으로 워렌비티는 환골탈퇴하여 더 이상 염문설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벅시>를 촬영할 때만해도, 참 눈이 휘둥그레해질 정도로 예뻤던 아네트 베닝이었는데... 세월의 흐름이 참 무상하게도 느껴집니다. 어느덧 60대의 노 배우가 되었으니 말예요. 하지만, 관록이 배여나오는 외모와 연기는 또 그 나름대로 매력 뿜뿜이긴 합니다.

 

영화 내용과 잘 맞아떨어지는 시 한편이 있습니다. 영화 속 아네트 베닝은 시와 함께 살아가는 여성이었죠...

여기 와 본 적이 있다.

언제, 어떻게인지 모르지만

 

문 뒤편에 있는

풀밭을 안다.

 

달콤한 향기

 

탄식의 소리

해안 주변의 불빛

 

당신은 내 것이었다.

 

얼마나 오래 전인지 모르지만

 

제비가 비상하는

바로 그때

 

당신은 그렇게 고개를 돌렸고

장막이 내려졌지

 

난 오래 전

모든 걸 알았어

전에도 이런 모습이었던가?

 

-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섬광> 중에서

 

 

영화의 내용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무표정한 남편과 간절하게 메달리는 아내. 이때만 해도 남편이 떠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아내... 늘 몰아부치면서 남편을 자신이 원하는 상태로 이끌려고 했던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남편은 그 부분에서 늘 힘들어했었죠....

 

 

시를 엮은 책을 만드는 '그레이스'는 고령임에도 항상 유쾌하고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에 반해 고등학교 역사교사인 남편 '에드워드'는 말이 없고 조용한 사람이었죠. 하나뿐인 아들 '제이미'는 독립해서 타지에서 홀로 살고 있었고, 대부분의 아들들이 그렇듯 몇 개월째 부모님께 와 보지도 않고 전화통화도 드물정도로 감정표현이 서툴지만 착한 녀석이었죠.

결혼 29년차의 이 부부는 한적한 해변가의 마을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에드워드'는 '제이미'를 집으로 불러들이고, 아내를 떠나겠다고 선언하지요. 지난 결혼생활동안 늘 열등감에 찌들어서 아내에게 짓눌려 살았지만, 이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더 이상은 아내를 만족시켜줄수 없다는 걸 깨닫았다면서요...

 

"어떡해야 당신이 더 행복해질까?"

"상대방을 사랑하면서도 떠나고 싶을 수 있어..."

"행복한 사람이 어딨어요? 괜챦으면 된 거죠."

"가끔 당신이 어떤지 알아? 멀리 있는 것 같아... 마음을 닫은것처럼..."

- 영화 속 대사 중에서

 

늦은 나이에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만난 아빠의 모습, 29년간 쌓아온 결혼이란 성이 무너지는 걸 용납할 수 없는 엄마의 모습... 서로 맞지 않지만 우연한 조우로 결혼에 이르게 된 두 사람의 불행(?)한 만남. 짧았던 행복의 순간을 틀어잡고 버티던 위태로운 결혼생활은 어느 순간부터인지 녹아내려 버렸죠.

 

 

서로 사랑하며 결혼생활을 유지해 왔다고 믿었던 '그레이스'는 남편의 이별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깊은 충격과 슬픔에 빠져 방황하지요. '에드워드'와의 대화를 통해 '제이미'는 아빠의 감정을 이해하게되고, 반면 엄마의 입장도 알게되어 중간에 끼여 혼란스러움을 겪게 됩니다.

몇 십년 전만해도, 한국사회에서 이혼이란 대단히 부담스러운 주홍글씨여서 지옥같은 결혼생활을 참고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었죠. 요즘에도 물론 이혼이란게 굉장히 힘든 상처임에는 부인할수 없지만 그래도 억지로 참고 사는 경우는 확실히 줄어든 거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도 생각보다 엄청 높더라구요...

서로가 좋아서 한 결혼이지만, 눈에 씌워진 콩깍지가 걷히고 나면 날것의 모습들과 마주할수 밖에 없게되고 그 모습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면...

 

 

깝깝한 상황에 가슴이 너무 답답해질 때 즈음이면, 아름다운 영국 시골해변의 풍광이 화면에 펼쳐지면서 숨통을 한번씩 트이게 해줍니다. 손에 꽉 잡히지 않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고찰...이라고 해야 할까요? 영화를 보고 나서도 무언가 가슴을 울리는 게 있는데도, 추상적인 '사랑'이란 무형의 가치처럼 그게 무엇인지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엄청난 두께의 고전 소설은 요약해서 설명하는 게 어불성설입니다. 그 수많은 깨우침과 지적만족의 순간들을 한 두줄 줄거리로 표현한다는 게 작가에 대한 모독이겠지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것> 또한 몇 줄의 글로써 영화 내용을 전달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풀어낸 이야기가 주는 분위기와 감정선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수가 없으니까요. 오히려 몇 줄의 글이 주는 잘못된 선입견이나 고지식한 편견들이 영화감상을 방해할 수 있을거 같네요. 결혼하신 분들은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감상해 보시는 게 좋을거 같습니다.

 

 

이질적인 문화차이는 좀 있지만, 영화 속에 묘사된 '사랑'이라고 믿는 것과 '결혼'을 유지시켜주는 것들에 대한 단상들이 끊이지 않는 서정적인 드라마였어요. 등장인물들이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적어서 제작비는 단촐했을거 같더군요. ^^...

나이 들었지만, 매력적인 두 배우들의 중후하고 안정적인 연기덕에 많은 생각을 하면서 참 좋은 시간을 갖었던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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