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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 시인

 

지금은 남의 땅 ㅡ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긴 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갑부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ㅡ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1926년 <개벽(開闢)>지 6월호에 실렸던 이 상화 시인의 민족적 울분과 저항이 표현된 시입니다.

엄혹했던 시절, 일제의 가혹한 압제 속에서도 조국에 대한 애정을 절절하게 표현했던 이 시는 "최대의 절약 속에 최대의 예술이 있다."라는 시적묘사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를 들 수 있는 명 구절이 있어 더욱 더 유명하지요.

 

시인 이상화.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빼앗긴 들이라 해서 어찌 봄이 오지 않겠습니까만,

시인의 마음속에서는 나라 잃은 설움으로

이제 막 피어오르는 꽃봉오리의 모습조차 부러웠을테지요...

 

국어 참고서에 보면,

이 시는 국권 상실의 슬픔과 주권회복의 염원을 담은

자유시이자 서정시라고 되어 있더군요.

 

코로나19 로 인해 온 세계가 일상의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에게 봄마저 빼앗기고 있는건 아닌지 싶네요...

 

하루 종일 부슬부슬 봄비가 내린 뒤,

다소 쌀쌀해진 저녁 공기를 KF94를 통해 들이마시다보니

문득 이상화 시인의 이 시가 머리속에 떠오르더군요.

 

혹자는 코로나19가 진정되어도

또 다른 종류의 제2, 제3의 신종 바이러스가 유행을 할 것이고

그 간격은 점점 더 짧아질거라고 경고하더군요.

 

탐욕스런 인간들의 욕망이 이미 선을 넘어버려 파괴되어버린

생태계와의 불균형이 초래한

불상사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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