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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골든 아워 1,2. 이국종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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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흐름출판. 예스 24>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메스컴을 통해 보여지는 이국종 교수의 어두운 얼굴엔 다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일이 힘들고 몸이 고달퍼서 만이 아니었다. 중증외상센터라는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선진의료시스템 을 정착시키려고 분투하는 이국종교수의 선한 노력들왜 그다지도 어렵고 힘들게 흩어지곤 했을가?

그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많은 말들을 쏟아 놓았다. 김훈의 <칼의 노래> 서사를 따라간다는 본인의 솔직한 고백처럼, 책 구석구석에는 김훈 필체의 냄세가 난다. 하지만, 그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문체 또한 확연히 베어나온다. 게다가 그의 필력은 상당히 강해, 책의 흡인력도 뛰어났다. 정리가 덜 된 듯 군데 군데 겹치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스토리의 몰입도는 상상 이상이다.

시스템의 부재와 근거없는 소문들, 부조리가 난무하는 환경에 맞서 팀원들이 힘겹게 버텨내는 동안, 나는 어떻게든 본격적인 지원을 끌여들여 우리가 가까스레 만들어 온 선진국형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싶었다.

...P9. 1권

 

책 속에는 동료 교수가 이 교수를 말리며 이런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계, 언론계에 막강한 실력자들과 줄이 닿아 있는 의료계 인사들에게 밉보였다간 흔적도 없이 소멸될수도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모 국회의원이 지역구 시민들에게,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신과병원을 시 허가를 받고 건축하려던 모 병원장을 상대로) 공사를 강행한다면 그 병원장을 처참하게 짓밟아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말썽을 빚은 적이 있었다. 내가 직접 접해 본 세계가 아니라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충분히 가능성과 개연성은 있어보인다. 드라마 속 얘기 같지만...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석해균 선장을 살려낼 때, 대한민국의 날고 긴다는 명의들을 다 제쳐두고 변방의 이국종 교수가 집도를 하게된 배경은 무엇일까? 다들 책임지기 꺼려하는 상황에서 오지랇 넓게 나선 것이 이유일까?

응급의료체계, 특히나 중증외상치료센터를 시스템화 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도 수많은 말잔치와 배신 으로 화답했던 공직사회 관료들과 관계자들. 이국종 교수가 느꼈던 한국사회의 비루함. 돈 되는 것은 냄세를 맡고 하이에나처럼 득달같이 달려드는 의료 자본주의 사람들. 3만불에 육박하는 GNP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저열한 국민성. 어렵사리 책정된 보조금조차 이리 뜯기고 저리 뜯겨 막상 현장에 닿지 않는 현실.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화재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들의 처지는 한때 매스컴에서 이슈화 되기도 했다. 그후 얼마나 개선되고 얼마나 지원이 이루어졌는지 후속보도는 접하지 못했다. 아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항상 위태롭게 생명을 걸고 다녀야 하는 항공진료업무. 결국 최근에는 헬기 추락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떠한 보상도 없이, 온전히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개인적인 희생임에도 이를 비아냥거리는 인간들. 이국종 교수는 국가의 시스템에 뭔가 변화를 일으키고 싶어서 달려드는 개인들에겐 상상못할 고통이 따라올 수 있음을 경고한다. 비록 그것이 선의를 가지고 대중들을 위한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스스로 정치를 못하는 사람이며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고백했듯이, 그가 중증외상센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난투극에 가깝다. 석해균 선장을 치료하는 굵직한 이벤트로 한 때 사회적관심을 받았으나, 이내 관심이 시들해자 그는 늘상 병원에 적자를 안겨주는 천덕꾸러기로 치여 살았다. 개인의 건강을 깎아먹는 희생을 바탕으로 중증외상센터의 고사를 막기위해 버텨왔다. 팀원들 모두가 똑같은 상황이었다.

나는 중증 외상센터 설립에 대한 지원을 부탁하기 위해 국회의원 회관을 드나들었다...몇몇은 만나기조차 어려웠다...나랏일을 하는 의원들은 바빴고 나 같은 민원인들은 너무도 많았다... P189. 1권

 

그 바쁜 와중에 언제 책을 쓸 틈까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해결된다. 책을 읽는 내내 비루한 의료계 현실 속에서 울부짖는 그의 모습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수익창출에만 목을 매는 의료현실 속, 만성적자의 중증외상센터를 수년간 이끌어 오면서 만신창이가 됐다는 그는 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를 걱정했다. 실제로, 한국 응급의료 체계를 위해 애쓰던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윤한덕도 얼마 전 과로로 유명을 달리 했다.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의 건강까지 희생하며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헌신하는 그의 모습은 가히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 목표가 사리사욕이 아니고, 목숨이 경각에 달한 외상환자들을 구하는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 또한 존경스럽다. 단순히 밥벌이를 위해서일뿐이라는 그의 빈말은 절대 거짓일 것이다.

책은 ‘정경원에게’로 시작된다.

자신이 아직 이루지 못한 중증외상센터의 전국적인 시스템화를 후배의사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처음엔 출간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다가, 소중히 여기는 중증외상 팀들의 헌신이 잊혀 지지 않도록 활자로 남겨야 한다는 출판사 직원의 설득으로 수년간 생각나는 대로 메모를 끼적인 것을 출판했다고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방 가능한 사망’에 이르는 현실을 개선하고자 ‘선진국형 중증외상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과정의 기록인 셈이다.

중증외상환자의 처참함과 그들을 구하기 위한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의료기사, 소방대원들의 분투를 정확히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그의 책은, 그 만의 색체가 분명하다. 국가의 지원을 받기 전에는 매년 수십억 원의 적자를 내어 병원운영자들의 암묵적인 퇴사 압력에 시달렸고, 유명세를 탄 후에는 병원내외에서 질투 섞인 뒷말에 시달렸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방화범의 불꽃이 관료주의의 헛점을 파고들어가 국가시스템 전체를 불태워버릴 수 있는 나라다...P84. 2권

만성질환자와의 형평성문제를 들며 중증외상환자들에게 투여되는 의료시술비를 삭감하는 보험심사팀들과의 지난한 밀당, 수많은 공공기관들의 무책임한 관료주의 등 그가 겪어 온 의료계를 둘러싼 한국의 실상은 모순투성이다.

전쟁과 가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 치던 끝의 관성일까? 한국사회가 약육강식의 정글과 다를바가 무엇인가? 국가가 세금을 걷어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님비현상은 한국 내에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증외상치료에 있어서 항공수송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3배가 넘는 헬기출동 기록을 갖고 있는 런던에서는 헬기 소음에 대한 단 한건의 민원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병원내외에서 헬기소음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협박전화가 실무팀에게 직접 오기도 했단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CPR을 시행중인 의료진에게 자신을 빨리 진료해 주지 않는다고 소리지르는 환자가 상존하는 한국 응급실내 모습과 판박이다. 잔디가 상할까봐 이착륙을 허락하지 않는 관공서들의 행태는 낡은 헬기에 목숨 걸고 애쓰는 이들의 사기를 얼마나 떨어뜨렸을지 가늠이 된다. 도데체 우리 공동체는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추악하게 변해 버린걸까?

그 남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빨리 전실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보았다...간이 갈가리 찢어진 환자를 내가 밤새 수술해서 살려놓았다는 것을 그가 고려할 리 없었다. 무례와 이기(利己)에 둘러싸인 지긋지긋한 상황들이 겹쳐졌다... P 186...2권

 

승자독식과당경쟁으로 처절한 전쟁터가 되어버린 삶의 현장, 그 곳엔 병자와 약자를 위한 공간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세상이라면, 맹수에게 쫓기는 영양무리들이 은연중에 약한 동료를 밀어내는 동물의 세계와 다를게 무언가. 황창연 신부는 “이제는 우리도 좀 베풀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한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펼쳐가는 그의 원대한 계획들은 나눔의 행복을 전파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선한 그들의 행보는 좁은 앞길만을 보고 걸어가는 내게 부끄러움을 안겨준다.

오늘도 매스컴을 도배하는 몇 몇 추악한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며, 천민자본주의가 엄혹하게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그 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은 모든 것을 바쳐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이들 덕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그들이 부디 너무 상하지 않고, 그들이 간절히 원하던 세상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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