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여행

사람풍경. 김형경

반응형

<출처 :사람풍경. 예스24>.2012년

 

회사 건물 중앙복도에 있는 6대의 승강기는 다른 고층 건물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사람들을 싣고 오르내린다. 승강기를 탈 때면 생각나는 단어가 있다. 우연(偶然).

일단 타고나면, 어떤 사람들과 만나게 될지에 대해 내 의지는 1도 관여할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라는 넓지 않은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내릴 때까지는 온전히 우연한 만남만이 있을 뿐이다. 짧은 순간, 좁은 공간에서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하기야, 이런 만남이 어디 엘리베이터 안 뿐이겠는가?

@ramche/unsplash

 

건물 10층에서 지하 2층까지 오르내리면서 거치게 되는 층수는 매번 다르며 만나는 사람이나 싣게 되는 물건도 가지각색이다. 걸리는 시간 또한 수 십초에서 수분까지, 상황에 따라 크다면 큰 차이가 난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승강기가 오는 호텔식 승강기가 아닌 고로, 승강기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단 몇 초라도 빨리 가려고 여기저기 승강기 스위치를 눌러놓고 있다가 가장 빨리 오는 것을 타곤 한다.

타기 전 눌러 놓았던 다른 승강기의 버튼을 취소해 주면 좋을텐데, 다들 그럴 생각도 시간도 없다. 화장실은 들어가기 전까지가 급하지 일을 본 뒤는 사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가 부지불식간에 타인의 귀중한 몇 초의 시간을 빼앗는다. 

많은 이들이 승강기 앞에서의 몇 초 기다림을 참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승강기 안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도 없는 층에 불필요하게 서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우리는 여전히 급하다. '빨리빨리'라는 정서에 익숙해진 탓일까?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끊임없이 닫고 열리는 승강기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패거리 문화를 대변하듯 지인들을 태우기 위해 무작정 승강기를 잡고서는,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양해도 구하지 않는 매너 없는 사람도 있고, 불편해 보이는 사람을 위해 자기가 내려할 층도 아닌데 내리면서 상대를 배려해주는 사람도 있다.

@christopher_burns/unsplash

 

건강을 위해서라도 걷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딸랑 2개 층 내려가면서 승강기를 타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반대편에서 멈칫거리며 탈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도 보이고, ‘잠깐만요’를 외치며 기를 쓰고 올라타고서는 짝 홀수 층 운행여부를 헷갈려 잘못 탔다고 시끌벅적 소란을 피우는 사람도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소소한 일상의 대화를 큰 소리로 통화하며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고, 오지랖 넓게 이것저것 참견하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다들 쭈뼛거리며 말 한마디 없는 침묵이 유지되기도 한다.

"멍하니 서서 딱히 할 일 없는 승강기 안밖에서 지켜본,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은 가장 역동적인 드라마임에 틀림없다.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그 사람의 살아온 과거가 만들어 낸 경험칙과 무의식에 침잠되어 있는 본성이 묻어 나오고 있을 것이며, 각 사람들의 행동들이 모여 작은 공간 사회의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사람풍경>은 소설가 김형경의 첫 번째 심리 에세이이다.

풍경은 흔히 사람을 제외한 자연환경을 연상하기에, 사람풍경은 언뜻 언발란스한 느낌이 드는 제목이자 흥미를 유발하는 단어조합이다.

이 책은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와 다양한 체험을 통해 내면 성찰을 시도하고 있는데, 작가는 오랜 시간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독학으로 심리학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이 책 내용에 대해 '비전공자라는 콤플렉스를 최대한 활용하여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을 치열하게 파고든 객관적인 시점'이라 인정하였다.

김형경 작가가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녀가 파고들었던 정신분석의 깊이만큼 깊은 울림을 선사하기도 하고 그녀가 다녀왔던 나라들만큼이나 다양하며 흥미롭다.

@christjoelcampbell/unsplash

 

딱딱한 전문용어로 그득한 여느 정신분석에 관한 책들과는 달리, 큰 부담 없이 마음의 비밀을 열어 보이는 책이다. 문학적인 향기까지 더해져 있어,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소설책들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는 인간의 마음을 쉽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기술하고 싶어 이 글들을 썼다고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