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작가의 2018년 출간작입니다.
파과[破瓜] 란 단어를 제목으로 택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소설을 다 읽은 뒤에도 손에 잡히지 않네요.
사실 파과란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 지도 사전을 뒤져보고서야 알았구요.
우습게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여자 나이로는 16세를 이르는 말이요,
남자의 나이로는 64세를 이르는 말이라고 하네요.
게다가, 성교에 의하여 처녀막이 터지는 일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구요.
또 하나, 폐수를 활성탄 흡착탑 같은 곳에서 처리할 때
처리수에서 처리물질이 누출되는 현상을 일컫기도 한다네요.
하여간, 구병모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난생 처음 접하는 단어들이 가끔씩 튀어나와
이걸 검색해서 뜻을 확인해 봐야지 하다가도
흐름을 끊기 싫어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왕왕 있더군요.
그간 몇 작품 읽었던 구병모 작가의 필체는 <파과>에서도 여전히 유지됩니다.
호흡이 길면서도 가독성이 뛰어나게 잘 다듬어 놓은 문장들...
주변 묘사는 최소화하면서도 상황묘사만큼은 지독하게 디테일한...
때론, 삑사리가 나는 문장도 간혹 눈에 띄지만
전반적으로 퇴고자체를 무척이나 신경쓰는 것 같은 작가이죠.
60대인 작품의 여주인공 직업이 뭔 줄 아세요?
'방역업자'랍니다. 인간사회속에 기생하고 있는 해충들을 제거해주는...
네, 상상하시는 것 맞습니다. 인간 해충들 말이지요.
흔히들 '킬러'라고 부르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로
방역업자라는 단어를 선택했더라구요.
게다가 주인공 이름은 조각''이구요...
방역을 철저하게 잘 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조각하려고 했나 보지요.
주인공 이름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 이름이 다들 엇비슷한 뉘앙스를 풍깁니다.
변변한 직장을 갖고 있더라도 은퇴를 가늠해야할 나이의 여성 프로페셔널 킬러라니...
설정부터가 재미있지 않습니까?
하여간 톡톡 튀는 상상력을 지닌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도 여전한 상상력으로 제 기대심리를 꽤나 만족시켜주더군요.
킬러들의 세계는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이어서,
얼마만큼 현실감 있게 그려냈는지는 평가할 도리가 없지만서도
그녀가 묘사하는 상황상황들에 관한
찰진 필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작가에 대한 기대치에 부응하여 너무 눈높이를 높여놓아서인지,
간혹 상황에 대한 묘사가 손에 잡히지 않을 때
오히려 당황스러울 지경이었으니까요.
차곡 차곡 상황묘사를 통해 쌓아가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형성과정도 흥미롭지만,
전후 맥락을 치밀하게 구성하는 실력 또한
추리작가 뺨 치는 것 같습니다.
<파과>란 작품에서는 유독 대화형 문장들의 삽입이 두드러집니다.
<아가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이지요.
작가로써는 새로운 시도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소설을 쓰는 입장에 서보면,
어떤 문장은 그대로 서술체로 쓰고
어떤 문장은 말 따옴표 안으로 들여올 지
결정하는 일도 수월한 일은 아닐듯 해요.
이미 열정을 잃어버려,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을 조금 흉내라도 내 보려고 했는데
스토리텔링이란 게 그리 만만한 작업일리 없지요.
구병모 작가의 작풍은 일상인 듯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의 외연부를
심드렁하지만 정말 디테일하게 묘사하는데 있지요.
그런 와중에, 슬그머니
등장인물의 속내까지 더듬어 볼만한 단초들을
끼워 넣는 솜씨가 참 일품입니다.
처음 몇 장을 읽었을 때,
너무 기가 막힌 문장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
헛 웃음이 피식거릴 정도 였지요...
책 읽는 맛이 절로 났으니까요.
아껴 읽고 싶어서 그만 책을 덮어버리기까지 했답니다.
다음날 다시 책을 보았을 때는 전날에 비해 감흥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흥미롭게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네요.
능력 딸리는 초보 작가들이 문장력 키우기 위해 필사해봐도
괜챦을 작품같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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