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어린시절의 내 모습을 되새겨볼 때가 많습니다.
유전이라는 가공할 힘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 나의 작은 조각들이 그대로 아이를 통해 투영되는 것이 확실히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단점이 어느샌가 내 모습속에 비칠 때도 있지요. 정말 당황스럽고 못마땅한 순간이지요.
하지만,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을 애써 부인한 꼴이지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이 아닌 한,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 대부분이 내 부모에게서 물려 받은 유전자로 인해 형성된 것들이니까요.
내 부모님 세대만 해도, 지금 아이들 시각에서 보자면 지지리도 못살고 궁상맞은 생활을 했었지요.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궁핍함을 아무리 아이들에게 실감나게 설명한다 할지라도, 먼 나라의 전혀 공감하기 힘든 해외토픽 뉴스 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구질구질한 과거를 굳이 들추어내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매스컴을 통해서 가난했던 우리의 옛 모습을 들여다보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모두들 화려함을 좇아, 좀 더 풍요로운 미래를 꿈꾸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군중심리일지도 모르겠네요.
유전이야기를 하다보니, 관련된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떠오르네요.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인 것들이야 유전을 통해 전달된다치더라도... 사고방식이나 행동패턴 등이 유전으로 전달되는 건 정말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물론, '보고 배운다'고 부모님들의 행동패턴을 보고 자라면서 체화된 부분도 있을 겁니다.
평생을 아끼면서 늘 적자인 살림살이를 떼워나가시던 어머님의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저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 제 눈에 낭비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아이들의 행동이 곱게 보일리 만무하지요.
그런 반면, 먹다 남은 음식은 과감하게 버려 버리는 형제자매 중 한 분의 모습은 되게 의아해 보입니다.
맞벌이가 드물던 시절, 두 내외는 집에서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어쩌다 만든 식사에서 남은 음식은 결국 곰팡이 밥이 된다며 깨끗하게 치워버리는 게 현명하다고 하시더군요.
생활환경에 따른 적응력이 유전의 힘을 이겨낸(?) 경우라고 해야 할까요...
살다보면 누구나 다 외로움이란 느낌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그 외로움이란 느낌이 얼마나 강력한지 금방 우울한 감정을 불러오기도 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은 회의를 하게 만들죠.
얼마전까지 좋아 미칠것 처럼 즐겼던 일마저 시큰둥하게 만들어버리는 이 무시무시한 느낌은 사람을 꽁꽁 묶어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어 버릴 때도 있습니다.
왜 이런 느낌을 우리는 후손들에게 전달해주고 우리들 또한 물려받았을까요?
생각해보면, 한 참 전의 세상에서는 외로움을 느낄만 한 상황은 곧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었습니다.
공동 생활을 하던 인류에게, 그 공동체에서의 추방은 또 다른 사형선고와 유사했지요.
물론 슈퍼맨이어서 혼자서 사냥과 생존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면, 공동체에서 쫓겨난다해도 그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온갖 맹수가 득시글 거리던 야생의 자연 속에서 함께 할 공동체로부터의 축출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에게는 오래 지나지 않아 굶어죽거나 잡아먹히는 결과로 이어지기 십상이었겠죠.
죽음을 연상시키는 공동체로부터의 축출... 외로움의 정체는 바로 그것인 듯 합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만들어져 우리 유전자 속에 깊숙히 각인된 외로움이란 느낌...
우리는 본능적으로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애씁니다.
열심히 일에 몰두해 보기도 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해갈해보려고 하고, 때론 술이나 약물에 의존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그 누구도 외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다는 거지요.
인간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은 순간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엄마 뱃 속에 있을 때'라는 거지요...
물론 말도 못하고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는 태중의 시기에 외로움을 느낄수 있네 아니네 하는 논란은 예외로 하구요...
온갖 외부의 위협요소로부터 차단된 뱃 속 궁궐 안에서 자신을 위한 완벽한 시스템 하에 살아가는 순간이기에 외로움같은 느낌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주장이지요...
그렇기에 결국 모든 인간들은 늘 그런 이상적인 상황을 꿈꾸며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태어나는 순간 인간은 완벽했던 자궁 속 생활에서 밀림세계와 같은 현실로 떠 밀려 나오게 되지요. 온갖 위협 요소들이 득달같이 달려듭니다.
일단 해로운 미생물들이 물 밀듯이 밀려 들어오겠죠.
게다가, 배고픔을 모르고 지낼수 있던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울며 보채거나 살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만 합니다. 탯줄을 통해 편안하게 영양분을 제공받던 호시절은 물건너 갔으니까요...
세월이 많이도 흘렀네요.
어느 새 성인키로 훌쩍 커 버린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 간의 외로웠던 순간들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군요. 하지만, 사람들 속에 섞여 있을 때조차도 어떤 순간은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던 기억은 확실히 납니다.
그런 느낌은 아무에게도 나 자신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우습게도 내 자신도 나를 잘 모르는데, 타인으로부터 나 자신을 이해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잘 알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의 그 느낌을 갈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느낌을 줄 수는 없습니다.
물론 한참 사랑에 빠져 있는 연인들은 사랑하는 이로부터 그런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만, 그런 느낌은 일시적인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즐겨보는 오락물 중에 <아는 형님>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왕년의 농구스타 서장훈씨가 고정멤버로 나오는데, 그는 자주 돈 많은 싱글남으로 아직도 빚을 다 갚지 못한 이상민씨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처럼 묘사되지요.
이혼남인 이 두 사람의 얼굴에는 늘 외로움의 그림자가 서려있는데, 이건 제 개인적인 느낌만은 아닐겁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도, 아무리 바빠도 외로움이란 괴물은 스펀지에 물 스며들듯이 우리들을 파고 듭니다. 고로,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에서 자유로울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겠군요.
한때는 생존에 꼭 필요했던 이 외로움이라는 느낌이, 초고속 인터넷 시대인 요즘시대에 과연 불 필요한 것일까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진화하는 과정에서 불 필요한 기능들은 느리기는 하지만 떨구어 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외로움이란 느낌은 뭔가 우리 삶에 충분한 기능을 하고 있기에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에, 혼자 외로움에 시달리며 지내지 말고 상처받고 힘들지라도 타인들과 섞여서 투닥투닥거리며 살아가라고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느낌 아닐까요?
뭐 이런 저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스쳐지납니다.
아까부터 친구들과 단체톡을 하면서 텐션업되어 있는 아이를 보며, 몇 일전 친구가 없어 외롭다고 투덜투덜 말하던 게 생각나 피식 웃음이 삐져나옵니다....
'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상] 에델바이스. 사운드 오브 뮤직. (32) | 2020.12.18 |
---|---|
[단상] 소향. 싱어게인. 적자생존. (54) | 2020.12.09 |
조선왕조실록. 朝鮮王朝實錄 (40) | 2020.11.21 |
Autumn landscape of Seon-am Temple (11) | 2020.11.19 |
평소에 잘 보지 않는 것들. 잘 보이지 않는 것들. (18) | 2020.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