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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여행

장송곡. Trauermu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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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힌데미트 (Paul Hindemith : 1895~1963)

프랑크푸르트 근교 하나우에서 태어난 힌데미트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로 음악을 선택했던 페인트공 아버지의 결단으로 음악가로서의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다행히 음악적 재능이 있었던 그는,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관현악단에 부악장을 거쳐 악장이 된다.

바이올리니스트에서 비올리스트로, 연주자에서 작곡가로 파울 힌데미트의 음악인생은 끊임없이 변했다. 나치의 협조자였던 그는 이후 망명자로 삶을 바꾸고 매순간 나름의 가치관에 따라 살았던 현실적인 예술가였다. 힌데미트는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그의 부인은 부분적으로 유대인의 혈통을 지니고 있었고 함께 활동하던 3인방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유대인이어서 친 유대인적 성향이 있다고 나치가 판단한 탓에 그의 음악은 퇴폐적이라고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20세기 독일의 중요한 작곡가이자 전직 군인이었던 파울 힌테미트는 뛰어난 바이올린과 비올라 연주실력의 소유자였다.

초기에는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 표현주의로 관심을 돌렸다. 힌데미트는 누구나 연주하고 즐길수 있는 아마츄어 음악을 작곡하곤 했다. 현대음악이 점점 청중과 멀어지는 현실을 작곡가로써 실감하고, 실용 음악을 통해 청중과의 거리를 좁히려 했던 것이다.

교향곡<화가 마티스>, 모음곡<격조 높은 환상> 등의 대표작이 있다.


격조 높은 환상 (Nobilissima Visione)

성 프란치스코의 전설을 바탕으로 1938년에 작곡한 3막의 발레 음악중 3곡을 뽑아 만든 모음곡이다.


1936년 1월 19일, 힌데미트는 3일뒤 있을 런던에서의 비올라 협주곡 영국초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20일 자정 직전에 조지 5세 국왕이 서거하고 연주회는 취소되었다.

힌데미트에게 국왕 서거를 추모하는 작품을 작곡해 달라는 의뢰가 갔고, 그는 연주회 취소로 맘이 불편했을 법 한데도 이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다음 날 BBC가 제공한 사무실로 가서 작업을 시작한 그는 1월 21일  오후 5시에 이 장송곡을 완성했다.

 

작곡가들이 한 작품을 작곡하는데 길게는 수년까지도 걸린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이 작품은 고인이 된 국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장송곡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 곡은 꽤 놀라운 작품이다.

1월 21일 저녁,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 작품은 영국의 거장 지휘자 에이드리언 볼트와 파울 헌데미트의 독주로 BBC 라듸오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으로 연주되었다. 매우 인상적이고 특이한 사연을 담고 있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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