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어내며 이제 막 마지막장을 덮었습니다. 너무 가슴아프고 답답한 마음 가눌길 없지만, 한켠으로는 중독된 것처럼 계속 끌리는 묘한 감정선을 뭐라 표현할 길이 없네요. 읽어낸다는 표현처럼 정말 힘겨운 시간이었어요.
제주 4.3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좁은 땅덩어리안에 살아가는 민초로써 불과 얼마전에 일어났던 근대사에 이처럼 무지해도 되는거였는지 꽤나 마음이 심란해지는 시간들이었어요.
'그 당시 그 장소에 내가 있었다면...' 하는 부질없는 상상만으로도 너무도 소름끼치고 하릴없는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았었죠. 책을 읽다보면 당연히 드는 생각입니다. 뭐 지금시절도 여러 면에서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복잡다단한 근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체성도 정말 다양해졌죠. 그러다보니, 누군가가 조금만 흔들어도 엄청난 굉음을 내며 조각조각 부서져버릴거 같은 위태로움을 느낍니다. "빨갱이라면 씨를 말려야한다."고 이를 갈던 서북청년단이 국가의 명령이라며 저질렀던 천인공노할 짓들이 직간접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부분은 읽는이들의 오금을 저리게 합니다. 참으로 야만의 시절을 견뎌왔던 사람들의 끔찍한 상처들이 조용히 독자들에게 스며들어 옵니다. 오히려 요란을 떠는 것보다 더 음습하면서도 아리게 고통스럽죠.
지금 이 순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한 복판 어딘가에서도 엇비슷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다른나라 일이라 치부하면 그만일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또한 그 어떤 사건들로 어떤 이유들로 또다시 끔찍한 국가폭력의 희생양이 될는지 미래를 알길이 없지요.
고요했던 일상이 깨어지고 예기치 못했던, 일개인으로는 어찌해 볼수없는 이변이 발생한 뒤 벌어지는 상황들을 다룬 재난영화처럼... 우리네 삶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며 아규비환의 세상이 펼쳐지는 건 아닌지 책을 읽는 동안 자주자주 뜬금없는 두려움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정세는 늘 불안한 곳이었죠. 유럽 어느 나라에서는 한국은 아직도 전쟁발발위험국이라고 인식한다고 하잖아요.
그 넓은 땅덩어리에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사람이 두번씩이나 대통령을 하는것도 참 이해하기 힘든데, 그 사람이 내뱉은 공약들이 한국에는 불리한 상황들이 많다하여 주식시장은 곤두박질치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에 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듯한 요즘입니다. 마치 조선시대혼란했던 시절을 바라보는 듯, 한국의 정치는 실종되고 권력다툼만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현상황에서 국제정세는 정말 쉽지 않게 펼쳐지는 것 같은데 정말 이래저래 심란한 마음입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현실과 몽환적인 환상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꽤나 헷갈리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여주인공이 꿈을 꾸고 있는 건지 혹은 상상속에서 원하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는건지 애매한 부분들이 꽤 있다는 거죠...
노벨문학상이라는 후광때문인지, 그녀의 묘사력은 고급지고 유려한 느낌입니다. 작가적인 시선의 섬세함도 여성특유의 감수성을 감안한다해도 부러울정도로 세세합니다. 배껴쓰기를 하고 싶을정도로 감탄스러운 묘사들도 끊임없이 이어지구요. 가슴아팠던 역사의 한 순간을 이렇게 유려한 필체로 색칠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때론 아이러니한 감정도 느껴졌구요... 감정이입하여 읽다보면 참 읽어내기 힘든 작품입니다.
인간의 야만성, 잔인함 그리고 가증스런 수동성과 거짓...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오욕의 역사가 주는 당황스러움과 창피함... 유대인 학살을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던 내 민족의 역사속에 참혹한 비극이 감추어져 있었다는 자괴감... 시절이 달라져 형태만 변했을뿐, 여전히 양극의 사람들을 둘러싼 추앙과 신격화의 변형된 모습은 진행형이고... 자그마한 트리거만 있으면 또 다른 비극의 역사가 재현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느낌이 드는건 괜한 데쟈뷰이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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