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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리뷰] 버든 세상을 바꾸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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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96년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로렌스라는 작은 미국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앤드류 헤클러 감독의 이 작품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지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픽션 영화와는 달리 관객의 심금을 두드려주는 묵직한 감동이 있습니다.

 

 

2020. 11. 25. 개봉일이라고 적혀 있지만, 사실 개봉 사실도 잘 모르고 있었던 영화였지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KKK단에 대해 조금은 알고 영화를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인 KKK단은 워낙 유명해서 모르는 분이 많지 않겠지만 말이죠...

아카데미 상을 휩쓸었던 명화 <벤허>의 남주였던 찰톤 헤스턴이란 유명배우도 이 KKK단의 일원이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사실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미국 백인들이 당시에는 적지 않았다고 여겨집니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도 세계 각국에서는 인종차별 문제가 끊이질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사회적 지위나 부, 피부색과 인종에 관계없이 똑같은 권리를 지니며 평등하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사상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 놀랍게도 불과 얼마 전의 일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사고방식이 아직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인간차별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인도의 야만적인 카스트제도는 '불가축천민'이라는 희대의 용어를 지금까지도 못 없애고 있으며, 최다 민족들이 모여 이뤄진 미국조차도 인종차별문제는 늘 골치 썪는 문제였지요.

 

 

LA를 거쳐 라스베가스로 가던 참이었죠. 환승시간에 여유가 있어 점심도 해결할 겸 LA 공항 내의 햄버거 가게에 줄을 섰었지요... 내 차례가 되어 주문을 하자, 서빙을 하던 비만한 흑인 여자는 갑자기 귀라도 먹었는지 "what??~~"" 을 반복하며 인상을 찌뿌려 댔죠. 바로 전, 백인 남성에게는 "Sir~!"까지 붙이면서 미소를 띄우며 주문을 받던 그 여자가 말이죠... 말로만 듣던 바로 그 인종차별의 현장입니다.

'너 같은 황인종 **에게 서빙을 하고 싶지 않다~!!'는 아주 강력한 몸짓이었지요.

 

공항 안에서는 노란 금 목걸이와 노란 금줄 시계를 찬 흑인 떡대들이 거들먹 거리며 떼거리로 몰려다니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바로 시비라도 걸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요. 라스베가스에 가서 볼 일을 보기까지 별로 문제가 생기지 않았던 내 영어발음을 유독 그 흑인여자만 못 알아들을리 없지요... 지금은 중년이 되어 있을 그 여자가 아직도 인종차별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사실, 이런 식의 불쾌한 경험은 한 사람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같은 인종들로 구성된 사회속에서 별 다른 차별을 당해보지 않고 살다가, 단지 피부색 하나만으로 낯선 이에게서 거부당하는 일은 매우 두려운 일이었지요. 집단에서 배제되면 죽을 확률이 높았던 인간에게는 원시 시대부터 고독과 따돌림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으로 각인되어 있으니까요...

 

 

인간의 사고방식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의 환경적인 요소와 깊은 관계가 있지요. 그렇게 형성된 사고방식은 여간해서는 고쳐지질 않구요... 또한, 그 정체성은 한 개인의 삶의 중추적 기둥이기도 하기에 이러한 정체성을 흔드는 일은 매우 고통스럽고 잔인한 경험일 수 밖에 없지요.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위치는 특별합니다... 자발적으로 미국 땅에 이주해 온 다민족들 틈바구니에서 흑인들은 노예라는 특이한 형태로 옮겨진 인종이기 때문이지요.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을 보호구역내에 소수만을 남겨 놓고 씨를 말려버린 미국인들은 아마도 원죄처럼 이 사실을 마음 속에 감추고 살아 온 듯 하지요. 거기에, 제국주의 시대에 값싼 노동력 쯤으로 여겼던 흑인노예들을 마구잡이로 잡아와서 미국 땅에서 짐승처럼 부려먹던 과거까지 백인들의 흑역사는 차고 넘칩니다.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사회구성원들 모두에게 인정받고 퍼져 나감으로써 인권의식이 고양되고, 과거의 불평등했던 인종차별행위들이 얼마나 무식하고 파렴치한 행위였는가를 반성하고 고치게 된 현재 시점까지도 과거의 추악한 인식들은 잠재의식 속에 고스란히 가라앉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 사회는 개개인의 단순 합이 아닙니다. 알다시피, 군중심리는 개인들의 심리와는 별개이지요.

마치 여러가지 종류의 원재료가 섞여 완전히 새로운 맛을 내는 음식이 되듯이, 한 집단의 정서는 개개인의 믿음이나 가치관과는 별개로 살아 숨쉬는 것 같아 보입니다.

나약한 인간은 무엇인가에 의지하고 싶어하고, 한번 믿음을 준 후에는 어지간 해서는 그 믿음을 거둬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온갖 징후들이 자신의 잘못된 믿음을 깨우쳐주려해도, 뇌피셜로 싹 지워버리고 오히려 그 믿음을 강화시켜 버리죠.

 

그리하여, 인류사를 돌이켜보면 집단이 저지른 광기어린 사건들이 적지 않습니다.

개개인을 들여다보면 어쩌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인데, 감히 상상하기 힘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죄책감마저 느끼지 못하기도 하지요... 유태인 학살에 관여했던 평범한 독일인들 얘기는 잘 아실거예요.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잘 알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막상 행동은 그 정반대로 하는 경우도 있지요. 아마 무의식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자신의 가치관 때문이겠지요.

문화와 정서가 정말 다른 곳에 가 보면, 그 차이로 인한 충격에 한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겁니다. 얼마나 자신의 가치관이란 게 편협되고 허약한 기반위에 만들어진 것인지를 깨닫게 되니까요...

 

그래서 서구에서는 젊은 시절 배낭하나 짊어지고 세계 곳곳을 여행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최근 코로나19 가 터지기 전에는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많이 세계 곳곳을 여행다니는 것 같긴 했습니다만...

실화를 바탕으로 꽤 지나간 시절의 사건을 다룬 영화이지만, 지금도 진행형인 문제나 다름 없습니다.

영화 한편을 보면서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도 드물 듯 합니다.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했던 명배우 브레스트 휘태커는 이 영화에서는 살을 쏙 빼고 등장해 케네디 목사역을 이름값대로 리얼하게 해 냅니다. 또 다른 남주 마이크 버든 역의 가렛 헤드룬은 다소 생소한 배우였는데 제37회 새턴어워즈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을 정도로 실감나게 잘 연기했지요.

마치 실제 인물들이 실제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듯 자연스럽고 리얼리티 만렙인 이 영화는 시종일관 꽉 짜여진 연출력과 연기 앙상블이 실감나게 느껴집니다.

 

영화감상은 각자의 경험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생각을 일깨우는 이런 영화를 좋아해서, 굉장히 인상깊게 보았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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