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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방. 우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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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위즈덤 하우스. 예스 24>. 2018년

      만 나면 만지작거리게 되는 스마트폰은 새로운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는 있지만, 내겐 시간도둑이나 마찬가지다.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인스턴트 시대임을 반영하듯, 실시간 쏟아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디지털 폭포수 속에서 건져 올린 것들 대부분이 뇌리에 머물고 있는 시간이 짧은 휘발성 정보들뿐이다.

게다가, 스마트폰은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일보다는 별 생각 없이 엇비슷한 일상을 보내는데 일조를 한다. 디지털 세상에선 자신의 지나다닌 길목보다 진한 흔적을 남긴다는 찝찝함을 알면서도 거의 중독수준으로 빠져 있게 된다.

사용하지 않으면 말라버리는 근육처럼 내면세계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정신없이 바쁘건 하루 종일 빈둥대건 내면의 근육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느 틈엔가 삶이 황폐해 진 느낌이 찾아온다. 자아가 말라비틀어지는 것이다. 

과잉생산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라 했던가? 불과 수 십 년 전만 해도 먹을 게 없어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던 세대들이 아직도 건재한데, 온 나라 구석구석에는 남아도는 물건과 먹거리들이 쌓여 있고 온갖 쓰레기들로 넘쳐난다. 굶어 죽던 아픈 기억이 생생할 세대들에게, 먹다 남아 버려지는 음식물들이 주는 회한도 이젠 오래전 얘기다.

 

   

     우리나라는 땅에 비해 과밀한 인구수로 피 터지는 경쟁이 불가피한 사회구조가 되어 버렸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당연한 상식이 되어 있는 사회가 아니라, 처절한 전투에서 승리한 극소수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사회가 되버린 지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지만, 모두가 서로에게 짓밟고 올라가야 할 타인일 뿐이다.

인구절벽을 경고하지만, 연령별 구성비율이 문제일뿐 땅덩이에 비해 인구는 지금도 충분히 과밀하다. 인구수가 늘어야 국력이 강해진다는 고정관념은 활쏘고 칼싸움 하던 시대의 어리석은 구시대 유물일 뿐이다.

헬조선이란 말처럼 사는 게 팍팍해지자, 국민들 스스로 인구수 조절에 들어간 듯 별의별 인구정책을 내 놓아도 분만율은 계속 떨어진다.

유럽 여러 나라에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대형 박물관갤러리 들이 꽤 많다. 엇비슷한 작품들이 수 십 점 씩 걸려 있는 전시실을 몇 시간 돌아보면 거기서 거기 인 듯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보면 모두 나름의 매력이 있는 명작인데 말이다. 너무 많은 걸작들이 한 데 모여 있다 보니 건성으로 보면 그 빛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여배우들도 개개인으로 보면 매력적이고 아름답지만, 수십명을 한 장소에 모아놓으면 느낌이 많이 달라지는 것과 엇 비슷하다. 인간의 오감은 참으로 얍삽하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 중에 '러너스 하이'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평범한 상태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경지이다. 이것 때문에도 마라톤을 계속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운동 싫어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자신을 학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당사자들은 뭔가 상응하는 즐거움이 있으니 힘들어도 참고 하지 않겠는가?

'러너스 하이'와 유사한 증상으로 예술작품을 보다가 순간적으로 기절을 한다거나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이 '스탕달증후군'은 1817년 '적과 흑'의 작가 마리 앙리 스탕달이 이탈리아 피렌체의 성당에서 미술작품을 보다가 황홀감을 느끼며 주저앉은 사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실제로 갤러리 안에는 한 작품에 꽂혀 넋을 놓고 감상하는 사람이 종종 눈에 띈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마다 때론 널리 알려진 유명작품보다 더 친근하고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전생에 무슨 연이 있었던 것 처럼...

온갖 현란한 동영상들이 실시간 업데이트 되는 인터넷 세상에서, 정지된 2차원의 그림하나가 관심을 끌어당긴다면 화가와의 교감이 이루어졌다 해도 무방할 듯 싶다.

<혼자 있기 좋은 방> 책 표지의 그림을 쳐다보다, 탁자에 앉아 신문을 들여다보는 여성의 뒷모습에서 나 또한 온화하고 푸근한 느낌에 잠기게 되었다. 살면서 언젠가 느꼈었던 아련하지만 좋았던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그림 한 점을 들여다보면서 순간적으로 일어난다는 게, 이게 바로 예술의 힘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화가이자 작가로써 활동 중인 우지현의 첫 책인 <나를 위로하는 그림>은 2015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에 선정되었고, 방을 매개로 펼쳐지는 삶의 이야기를 담은 이 에세이 책은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던 시기여서 3년 만에 나온 거라 한다. 회화작품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에세이와 관련된 작품을 선정하여 수록했다고 봐야 할 거 같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생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도이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유랑하는 시간이다. 마음을 깊이 점검하는 작업이고, 분별의 지혜를 길어 올리는 행위다...이것이 우리가 계속해서 그림을 봐야하는 이유일 것이다." (p387). 각박하고 힘든 세상사에 치여 지칠 대로 지쳐 있다면, 이 한권의 책 속으로 도피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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