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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 셰릴 스트레이드 저/ 우진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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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무의 철학. 예스 24>. 2012년 출간

 

 

4,285 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거친 산정의 등산로에서 등산화 한 짝이 벼랑으로 굴러 떨어진다. 큼직한 배낭을 짊어 맨 금발의 여성은 어쩔 수 없이 반대쪽 신발까지 집어 던진다. 그리고는, 슬리퍼에 테이프를 칭칭 감아 만신창이가 된 발로 터벅터벅 트래킹을 계속한다.

트래킹 코스 한 가운데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는... 어마어마하게 무거워 보이는 배낭은 지친 여성여행자의 몸을 짓눌러 한 걸음 한 걸음이 위태롭다.

그녀는 거친 여정을 꿋꿋하게 이겨내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의 의미를 찾아나간다. 담백하고 세심한 묘사력을 지닌 그녀의 글 솜씨가 독자로 하여금 PCT 전 과정을 같이 여행하도록 안내한다.

 

PCT (Pacific Crest Trail)는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멕시코와의 국경에서 시작되어 오레건을 거쳐 워싱턴 끝 캐나다 국경에서 끝나는 미국 서부을 횡단하는 4,285 km에 달하는 하이킹 길이다.

 

영화로도 개봉되었는데 <와일드>는 이 책의 저자인 셰릴 스트레이드가 홀로 도전하는 PCT 도보여행기이다.

 

거친 등산로와 눈 덮인 고산지대, 아홉 개의 산맥과 사막, 광활한 평원과 화산지대까지...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자연환경을 거쳐야만 완주할 수 있는 PCT는 완주에만 평균 152일이 걸리는 극한의 도보여행코스이다.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도 쉽지 않은 데다 폭설이나 화재 같은 뜻하지 않은 재해로 수개월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해 연간 약 125명 정도만이 겨우 성공하는 극한의 여정이라고 한다. 이 길에서 가장 높은 곳은 시에라 네바다에 속한 Forester Pass 해발 4,009m 까지도 올라간다. 백두산이 해발 2,750m이니 백두산보다도 거의 1,230m가 높은 지역이다.

PCT는 눈이 많이 오는 경우는 가기 힘든 구간이 많아 하이킹의 적기4월말부터 9월말까지라고 한다. 캐서린 몽고메리가 최초로 1926년에 제안한 이후로 클린턴 클라크가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연방정부에 야생통행로를 인정해주도록 청원하였고, 이후 로저스가 합류하여 자원봉사자들의 지도제작을 도와 1968년 미국의회에서 정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선구자들의 노력으로 1992년 지금의 PCT가 완성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제 어느정도 유명세를 타고 모르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PCT는 그다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는데, 쉽게 허락을 하지 않는 너무 힘겨운 코스 탓도 있을 듯 하다.

각종 SNS 와 현란한 시각정보들은 잠시도 우리를 쉬게 하지 않는다. 깨어 있는 매 순간 누군가와 접속되어 교감을 나누고 있기를 원하지만, 실은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꾸며진 모습으로 보여지는 인터넷 상의 페르소나들이 따뜻한 인간들의 향기를 갈구하는 방랑자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을까?

"마실수록 갈증을 심하게 만드는 바닷물처럼, 어쩌면 우리는 타인들의 가식에 치여 더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난했던 삶, 폭력적인 아빠,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 책의 저자 셰릴은 어머니와의 사별과 이어 벌어진 이혼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줄줄이 떠나보낸다. 이 후 갈피를 못 잡고, 난잡한 생활로 망가져 가는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우연히 눈에 띈 PCT 홍보 팜플렛을 보게 된다.

모든 초보여행자들이 그렇듯이 준비물을 넣은 배낭은 짊어지지도 못할 만큼 비대하다. 우연한 동행 여행자들은 스쳐 지나면서 이 초보여행자가 중도에 그만 둘거라 여긴다. 그렇게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뛰어든 4천킬로가 넘는 이 여행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절대고독의 공간 속에서 몸부림치며 몇 번의 생사기로를 건너며 셰릴이 깨닫고 얻은 것은 무엇일까? 책 전체에 녹아 있기에 한 두 문장으로는 요약할 수 없다. 워낙 여행기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 책이 특별한 여운이 남는 건 논픽션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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