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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마. 가즈오 이시구로 저/김남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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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음사. 예스 24>. 2009년 출간

 

 

내 지인 중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얘기하는 정말 말이 많으신 분(TMT, Too Much Talker)이 있다.

바로 그분한테 얘기를 듣고 있는 듯, 이 소설을 ‘사소한 일에 참 말 많은’ 성장 소설쯤으로 생각하며 한참을읽었을 즈음... 어느 샌가 소설의 주인공들인 캐시, 토미, 루스가 정상적인 인간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넌 왜 사니?”하고 진지하게 물어보면 선뜻 이유를 대는 사람이 별로 없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변치 않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그런 일은 없을 것처럼 죽음에 대해서 애써 외면한다.

왜 사는 지도 잘 모르면서 죽는 날까지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셈인가? 죽음 뒤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그것으로 정말 모든 게 끝인 걸까?

<출처 : Unsplash.com/@daisymupp>

 

선입견 없이 오로지 나만의 감상을 갖고 싶어, 소설을 읽을 땐 그 소설에 대한 어떤 정보도 접하지 않고 곧바로 책 내용을 읽는 게 요즘 생긴 습관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 질 때 즈음 책을 놓다가 겉표지에 적힌 결정적인 단어를 보고 말았다.

복제인간

이 한 단어로 책을 읽어가는 나의 프레임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겠다.

이미 원칙이 깨진 상황이라 호기심에 작가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 가는 영국 작가 중 한 사람이라 한다. 이름만 들어서는 일본계 2세이거나 귀화한 사람처럼 보인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고 나서 그의 주가는 급상승 했다.

이 책은 작가만의 독특한(수다스러운) 상황묘사 스타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쓰여 지고 있는데, 이젠 후광효과로 인한 것인지 작은 것 하나 하나 신경 쓰는 작가의 남다른 상상력으로 느껴진다.

수다스럽다고 느꼈던 문장들이 어느새 섬세하고 정교한 묘사로 보이는 건 후광효과로 달리 보이는 일천한 내 독서 능력 때문이리라. 하지만 작가에 대한 찬사에 비추어 볼 때 번역과정에서 사라진 뭔가가 있는 듯하여, 한번쯤은 시간을 내어 원서로 읽어보고 싶어진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영혼이나 사랑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하지만 분명히 있을 것 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느리게 펼쳐 나가며,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우리는 왜 사는가?’ 하는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영혼을 지닌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 나와 영혼의 세계로 올라간다고 믿는 사람도 많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들 각자의 영혼은 과연 우리 몸 어디에 있는 것일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숨 쉬는 매 순간마다 존재를 입증하는 공기 같은 것일까?

 

                                 <출처 : Unsplash.com/@cant89>. Davide Cantelli. Iceland

근원자라 불리는 사람으로부터 복제된 인간들이 전국 각지에서 교육되고 양성되지만 소설은 헤일셤이라는 곳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소설은 세 남녀 복제 인간들의 일상적인 삶과 성장과정에서 겪는 고민과 느낌들을 꼼꼼히 전한다.

이들 복제인간들은 졸업 후 간병인 생활을 하다가 장기 기증을 통보받으며 대개는 네 번째 기증을 하다가 죽을 운명들이다. 캐시는 토미를 사랑지만 그 감정을 헤아릴 줄 모르고, 루스는 캐시의 감정을 알면서도 토미를 남자친구로 삼는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루스는 마지막 기증 전 토미와 캐시에게 그간의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고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몇 년의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두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입증만 한다면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몇 년의 시간을 기증을 시작하기 전에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정보는 결국 두 사람의 운명을 전혀 바꾸어 놓질 못하는 유언비어였고, 토미마저 마지막 기증을 하고 캐시는 홀로 남겨진다.

어차피 다시 내려 올 건데 무엇 하러 힘들게 산을 올라가느냐는 농담이 있다. 근원자이든 복제인간이든 아무리 몸부림 쳐봐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어차피 죽을 텐데 우리는 왜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기를 쓰고 있는 걸까?

                <출처 : Unsplash.com/@frankiefoto>. Frank mckenna. San Diego, United States

의료기술의 발달로 장기 이식을 통해 말기 장기 손상 환자들의 생명에 환한 빛줄기를 선사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환자들이 장기 기증을 받기 위해선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다긴 기다림이 필요하고 장기 기증을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문제를 한번 쯤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제대혈처럼 자신의 장기를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해 봄직하다. 이 소설은 이런 모티브에서 시작됐으리라.

작가는 복제인간이라는 가상의 설정 속에서 은유와 암시로써 ‘우리는 왜 사는가?’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되묻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는 순간까지 수 없이 물었던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들은 빈약하고 좁은 내 삶의 우물 안을 뱅뱅 맴도는 ‘종족유지(?)’ 같은 궁색하고도 초라한 수준의 것들이다.

게다가 삶의 끝자락까지 가서도 만족할 만한 속 시원한 해답을 손에 잡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기우일까? 정말 난 왜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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