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차가운 바위들만이 계절의 변화에 둔감하게 반응하고 있던 이곳...
30여미터 높이의 바위를 깎아내고 만든 공간에 세워 올린 건물 안, 햇볕이 잘 안드는 북향쪽 창문을 통해 바라본 깎여진 상처투성이 바위의 모습은 살벌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던 곳에, 어느 샌가 식물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제대로 된 흙 한줌도 없을 공간에 차곡차곡 날아온 흙들이 쌓이고, 또 그 비좁은 공간에 어느 틈엔가 나무씨앗들이 날아와 새 생명을 틔워내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 거였죠.
바위틈새를 연약한 뿌리들이 파고드는 모습을 상상하다보면, 눈으로 보고도 차마 믿기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여름철 한바탕 빗줄기가 쏟아지고 나면 바위틈 어디에선가는 작은 폭포수도 생겨납니다. 그 물줄기를 버팀목 삼아 오랜시간을 버텨내는 거겠죠. 여름 한철의 그 뜨거운 햇살을 한 줌도 안되는 땅뙤기에서 말라비틀어지지 않고 말이죠...
아주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어 갔을테지만, 문득 눈에 띈 건 최근 몇년 사이의 일입니다. 부쩍 진해진 초록의 향연이 어느샌가 앙상했던 바위 표면을 그득 덮어가고 있었으니까요. 이런 추세라면 수 년내에 이 인공절벽은 온통 초록빛으로 채색되어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 어마어마한 바윗돌을 깎아낸 인간들의 힘도 대단하지만, 깎아지른 바위표면의 작은 틈새를 비집고 살아내는 불가능해보이는 미션을 수행해내는 식물들의 생명력도 정말 경이로울 뿐입니다...
숙소 한 구석에서 물을 주며 키우고 있던 작은 식물들은 환경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고사해 버렸습니다. 오랜 기간 영양분 공급이 부실했었던 건지, 두달여 동안에 겨우 겨우 몇몇 가지를 뻗어내더니 이사한지 단 하루만에 모두 말라비틀어져 버렸어요. 잘 보살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되게 허망하더군요. 정말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싶더라구요.
척박한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생명을 키워내는 강인한 녀석들을 바라보다, 문득 시들어버린 내 화분속의 가녀린 녀석들을 비교해 바라보니 별의별 상념들이 다 스쳐지납니다.
우리 모두가 김태희, 김연아, 손흥민 같은 셀럽이 될 수는 없는 일이죠. 하지만, 매일 매시간 우리는 그들과 같은 성공한 사람들만을 쳐다보며 뇌피셜에 빠져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물이 없어도 오래도록 버티며 생존할 수 있는 선인장인지, 아주 세심하게 돌봐야 할 여린 꽃나무인지도 구별하지 않고 자라나는 세대들을 너무 몰아부치고 있는 건 아닌지도 되돌아보게 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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